부부의 MT

춘천 무인 모텔

by 허니베리


“나 좀 달라진 거 같지 않아?”


나의 질문에 남편은 늘 당황한다. 매번 같은 문제가 출제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점수는 언제나 형편없다. 지난겨울만 해도 그렇다. 가슴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어깨 길이로 싹둑 자른 뒤 남편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면 가끔 보는 세탁소 아저씨도 척하고 맞힐 만한 문제였다.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목소리가 변한 것 같다"라고 응답했고, 그 대가로 한동안 찬밥을 얻어먹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나 좀 달라진 거 같지 않아?”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얼굴에 하얗게 퍼진 비립종을 제거하러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아침에 정답을 미리 알려줬으니 이번에는 틀릴 리 없었다. 추운 겨울 찬밥을 먹은 효과인지 남편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신중하게 답했다.

“점 빼더니 얼굴이 환해졌네.”

이런, 이번에도 낙제다.


우리 부부는 상대방에게 신경 쓸 만한 여유도, 다정다감함도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평상시 나를 좀 관찰하라고 한 번씩 테스트해 보는 건데 남편은 늘 이렇게 낙제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더 심각하다. 고르바초프를 닮아가던 남편의 머리가 K-의술로 인해 무성해진 것을 몇 개월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부부간 결속을 다지기 위한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고 여긴 우리는 멤버십 트레이닝, 그러니까 MT를 가기로 했다.

내 휴일에 맞춰 남편은 반차를 냈다. 우리는 용산역에서 만나 춘천 가는 ITX 열차에 올라탔다. 기차에 오르자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어 오랜만에 손도 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기차가 춘천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전날 밤까지 바빠서 새우지 못한 여행 계획 짜기. 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그간 야근과 주말 근무로 시달리던 나와 남편은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눈을 감아버렸다.

비몽사몽간에, 춘천역에 도착했다. 황사로 인해 뿌연 하늘 아래 넓고 황량한 역 앞에 서서 ‘춘천 맛집’을 검색했다. 잠시 후, 우리는 ‘피곤하니까 멀리 가지 말자’고 합의했다. 춘천까지 와서 말이다. 어쨌거나 남편과 내가 의견이 맞을 때가 있다니, 역시 MT 오길 잘했다. 역 근처 음식점에 갔다. 막국수는 평범했지만, 동동주는 적당히 시큼 달곰하고 시원하여 목을 타고 술술 잘 넘어갔다. 식사를 마쳐갈 즈음 다음 코스에 관해 의논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근처에 있는 강이라도 보고 갈까? 거긴 다음에 아이랑 부모님 모시고 가자. 아이와 부모님 생각하는 척하며 관광을 미뤘지만, 사실 배부른 데다가 취기까지 올라오니 노곤해져서 꼼짝하기 싫었다.

결국, 다음 일정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식당 밖으로 나왔다. 골목에 서 있는 모텔을 보자 우리의 연애 시절이 생각났다. 어느 날 밤 신촌 거리를 걷던 그가 말했다.

“쉬었다 갈래?”

나는 쿨하게 “그러지, 뭐.” 답하고는 벤치에 앉아서 쉬었는데, 정작 쉬자던 그는 자리에 앉지 않고 내 앞을 왔다 갔다 서성였다. 당시 나는 우리 사이에 왜 어색한 공기가 흘렀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한참을 그렇게 '쉬다가' 서먹서먹하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을 바라보며 그가 오래전에 했던 대사를 읊었다.

“쉬었다 갈래?”

남편이 뒷걸음질 쳤다.

“난, 난 피곤해서... 저기, 진짜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

“누나 믿어! 손만 잡을게.”

우리가 들어간 곳은 무인 모텔이었는데, 이용 방법을 몰라서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그냥 밖으로 나왔다. 내가 비록 취해서 다리가 풀리긴 했으나, 판단력이 완전히 흐려진 건 아니었다. 남편이 나의 약속을 믿지 못해 이용 방법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MT에서 큰 소리 내기 싫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어서 쉬고 싶단 생각만 간절했다. 근처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가 눈에 들어오길래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뒤 남편이 내민 죠스바를 베어 물자 서서히 에너지가 충전됐다. 우리 남편, 착하기도 하지. 이렇게 나를 아껴주고....

돌아가는 열차표를 구입하려는데 매진이라는 표시가 떴다. 옆에서 표를 끊으려던 젊은 커플이 “어떻게 해!” 하며 입으로는 걱정하면서도 눈은 웃고 있다. 나 역시 이를 어쩐담 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자, “입석은 있을 거야!”라고 외치며 부지런히 표를 검색했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다 힘 있을 때 가능한 거다. MT를 통해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지쳐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에게 피로감을 더 얹어주지 않는 것이 부부의 사랑이다’라는 결론을 얻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봄에는 남편과 보약이나 지어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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