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간, 출근복을 골랐다. 먼저 연두색 상의를 걸친 뒤, 고심 끝에 초록빛 도는 하의를 입었다. 완벽한 톤온톤 패션이다. 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 보였다. 오늘따라 출근이 늦어진 남편을 붙잡고 물어봤다.
“자기야, 나 위아래 녹색계열로 맞춰 입으니까 꼭 군인 같지 않아?”
그가 나를 쓱 쳐다보더니 답했다.
“아니. 파 같아.”
남편의 이렇듯 예리한 시선으로 사건이나 현상을 파악한 후 정곡을 찌르는 말을 던져 아픔과 동시에 웃음을 준다.
여러모로 남편과 반대 성향을 지닌 나는 언어 사용하는 양상도 남편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수습하기에 바쁘다.
얼마 전 있었던 일화이다. 남편에게 뜬금없는 고백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막 짜증도 내고 성질도 부리는데 당신한테는 못 그러잖아."
"그래서?"
"아무래도 당신이 내 천생연분인가 봐."라고 말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래도 당신이 내 천적인가 봐."라고 하고 말았다.
나도 몰랐던 나의 진심이 툭 튀어나왔나 보다. 남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실수로 엉뚱한 단어가 나왔네.”라고 정정했으나 ‘천적’이라는 단어는 이미 그의 뇌리에 박혀버린 듯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들은 늘 내 말실수를 무마해 주고 깊은 깨달음까지 주곤 한다.
요새 한자와 사자성어에 관심 많은 아들이 '천생연분'과 관련된 우리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천생연분이 무슨 뜻인지 내가 맞춰볼게! '천'은 하늘 천! '생'은 날 생! '연'은... 연은 뭐지?"
"인연이라는 뜻의 '연' 일 거야."
"그럼 인연 연. '분'은 나도 알아."
"그래? 무슨 뜻이지?"
"분할 '분'! 그러니까 '천생연분'은 '하늘에서 난 인연이 분하다'라는 뜻이야."
어쩐지... 그래서 우리가 결혼한 뒤 그토록 분했던 거였구나. 천생연분에 관한 아들의 해석을 들으며 우리 부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분할 때도 있지만 과분하다고 여겨질 할 때도 많으니, 그와 나는 진정한 천생연분이 아닐까. 이 과분함 속에는 아들 녀석의 존재도 크게 한몫을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