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에 관한 부부의 세계

가슴까지 자란 머리카락을 어깨 길이로 싹둑 잘랐다.

by 허니베리


한 해 전, 어깨선에 맞춰 정리했던 머리카락은 아래로 쑥쑥 자라나 일 년 만에 가슴까지 도달했다. 내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에 직장 동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짓궂은 동네 아줌마들은 밤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물으며 깔깔대고 웃었다.


긴 머리카락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일단, 긴 머리카락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것부터가 그렇다. 또한, 빠져서 굴러다니는 긴 머리카락은 눈에 잘 띄고 지저분해 보인다. 요새 탈모가 심해졌는데, 긴 머리카락이 중력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탈모가 촉진되는 게 아닌지 근거 없는 염려를 하기도 했다. 정장을 갖춰 입을 입을 때면, 치렁치렁한 긴 머리가 더욱 거추장스러웠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리를 기른 이유는 딱 하나,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과 육아로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다 보니 미용실 가는 일이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느 날 문득, 이대로 머리카락을 방치한다면 조만간 머리카락이 바닥에 질질 끌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을 멈추고 미용실로 달려갔다.


“고객님, 어떤 스타일을 원하세요?”

“싹둑 잘라주세요. 간신히 묶일 정도로요.”

일할 때는 머리를 묶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헤어디자이너가 가위 든 손을 머리카락에 갖다 대다가 멈칫하더니 질문했다.

“아깝지 않으세요?”

“전혀요. 잘라낼 걸 생각하면 속이 다 시원해요.”

그녀의 가위질과 함께 바닥에 수북이 쌓여가는 머리카락을 보니 묵은 때를 벗기는 듯한 개운함이 찾아왔다.


상쾌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집 안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식구 중 내 변화에 관해 언급한 이가 없었다. 다음날 역시 남편과 아들은 내가 머리를 자른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머리 자른 게 티가 안 나나?' 의아한 마음에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에는 이전의 내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짧은 머리의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일부러 남편 앞에서 서성댔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참다못해 질문을 던졌다.


“자기야, 나 변한 거 없어?”


남편이 나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답했다.

“감기 기운 있다더니, 목소리가 변했나?”


“아니, 나 좀 잘 살펴봐.”


나의 짜증 담긴 목소리에 남편은 고개를 들어 나를 흘끔 바라보더니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어투로 중얼거렸다.

“뭐지? 뭘까?”


“머리 확 잘랐잖아! 조금도 아니고 이렇게 싹둑 잘랐는데도, 못 알아봐?”


남편이 한참을 잠자코 있더니 한 마디 던졌다.

“난 매달 머리 자르는데, 당신이야말로 내가 머리 자른 거 알아본 적 몇 번 없잖아.”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자기 머리카락은 워낙 짧잖아. 잘라봤자 몇 밀리도 안 될 텐데, 그걸 어떻게 알아봐?”

'게다가 머리카락도 얼마 없으면서....'라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사실, 남편이 이 같은 반응이 서운하지도 않다. 괜히 입만 아프게 떠들어댔다고 후회할 뿐이다. 머리카락 잘라서 시원하고 편하면 됐지, 암. 그러나 남편은 한동안 찬밥을 얻어먹었다.


이것이 헤어스타일에 관한 부부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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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reazilla.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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