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무르익고 공간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얘들아,
너희 남편 될 사람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중학교 시절 수업 시간.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운 채 선생님을 주목했다.
인연은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란다.
나중에 결혼할 시기가 되면 주위를 잘 살펴보렴.
“에이, 그게 뭐예요?”
학생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선생님이 미래의 신랑감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콕 집어주기를 내심 기대했던 학생들은 김이 빠져버렸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선생님 말씀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무지 인연을 찾을 수 없었다. ‘운명의 짝’을 기다리다 지친 나는 심기가 불편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길래 이토록 나타나지 않는 걸까?
드디어, 내 나이 삼십 대 중반에 내 앞에 '그'가 나타났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열정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수없이 스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미국 대학 내 장애 학생 지원 시스템'에 관한 조사를 하기 위해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여러 대학을 탐방해야 하는 꽤 피곤한 여정이었다. 따라서 중부에 위치한 한 대학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쌓인 자료를 정리하며 여독을 풀기로 했다.
고풍스러운 숙소 건물로 들어서자, 로비 한쪽 구석에 놓인 예쁜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기에 걸맞아 보였다. 팀과 함께 움직이는 일정 사이에 잠시라도 혼자만의 여유가 생기면 로비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꾀죄죄하고 험상궂어 보이는 빡빡머리 동양인이 내가 찜한 소파에 자리 잡고 누워있는 통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드디어 비어있는 소파를 발견하고 자리에 걸터앉은 순간, 빡빡머리 녀석이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게 아닌가. 마치 그가 소파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자리를 내주었다.
남편과 사귀고 한참 후에야 그가 내가 며칠간 머물렀던 대학에 다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방문한 기간은 여름방학이었는데 당시 그는 학교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에게 소파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보여주었다. 빡빡이가 오기 직전 찍은 사진이었다.
“여기 알아?”
사진을 본 남편이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연히 알지! 우리 학교 안에 있는 호텔이잖아! 어, 이거 내 전용 소파인데?”
“뭐?”
“여기 내 지정석이었어. 피곤할 때마다 여기서 쉬었거든.”
“혹시 자기, 그때 빡빡머리였어?”
“어떻게 알았어? 스트레스로 탈모가 심하게 와서 빡빡 밀었는데....”
그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 집이 이사하면, 그도 따라나서는 것처럼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지 궁금하여 남편에게 물었다.
떨어지는 목련을 보며 우수에 젖곤 하던 여고 시절,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이던 남편은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대학 시절, 외로움을 한탄하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올 때, 중학생이던 그는 내가 이용하던 바로 그 지하철역 계단 아래 앉아서 짧은 스커트 입고 내려오는 대학생 누나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 그는 나보다 네 살 연하이다. 내 짝이 어디에 있는지 그토록 하나님께 물을 때,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셨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직장인이 된 이후로 나는 보스턴 오빠 집을 방문하기 위해 뉴욕 공항을 이용했는데, 뉴욕에 있는 부모님 댁에 방문하던 그와 공항에서 스쳤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멀어지는 가 싶던 우리의 거리는 그가 서른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 급격히 좁아져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이러한 우리의 만남을 ‘운명의 짝’이라고 칭하자, 남편은 ‘운명의 덫’이라고 정정했다. 음.
여하튼 운명의 짝이든, 운명의 덫에 걸린 것이든 간에 우리가 만나기까지 각자가 지내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 두 사람이 만난 타이밍이 실로 절묘했다.
만약,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다면 결혼할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어찌 됐든 간에, 오랜 세월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지 않고 운명의 짝을 기다린 내가 대견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으나 나를 향해 걸어와 준 남편이 고맙다.
이토록 귀한 남편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토닥거려 주고 싶은데, 한집에 살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 보기가 힘드니, 우리를 맺어주신 분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매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