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 좋은 곳에 자리한 서원
대청호를 제외하고 보령에서 가장 큰 호수는 청천호라는 호수다. 청천호 주변으로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한 바퀴 돌면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길에서 만난 화암서원은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8호로 지정된 화암서원에는 1610년 (광해군 2)에 이지함과 이산보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그 후에는 이몽규, 이정암, 구계우를 추가 배향하었다.
청천호를 바라보는 곳에 세워진 화암서원은 녹색농촌 체험마을이라는 토정마을안에 자리하고 있다. 토정마을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것을 보면 보령의 인물 토정 이지함에서 따온 듯 하다.
청천호를 바라보며 있는 화암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중문(中門),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정문(正門), 호패비(戶牌碑) 등이 남아 있다. 보령을 적지 않게 방문해 보았지만 서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연하게 지나가다가 표지를 보고 이 안쪽까지 들어와보는데 보령의 입구에 있는 청천호를 걸어 보았지만 이곳은 처음 와보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청천호를 바라보니 호수가 무척이나 커보인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7변(籩)7두(豆)이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모시고 있는 분들의 비가 정문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는 화암서원을 관리하시는 분이 거주를 하고 있었다. 지긋이 나이 들어보이시는 분이 물어본다. 그래서 보령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의 화암서원을 한 번 둘러보고 글을 쓰려고 왔다고 답해본다. 친절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을 보면서 사람이 사는 그런 향기를 느끼게 된다.
1610년(광해군 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지함(李之菡)·이산보(李山甫)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6년(숙종 12)에 ‘화암(花巖)’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723년(경종 3)에는 이몽규(李蒙奎)를 추가 배향하였다.
이곳의 사우에는 이지함을 주벽으로 좌우에 이산보·이정암·이몽규·구계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 겸 학문토론장소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지만 그 뒤 1922년에 지방유림의 발의로 복원하면서 이정암(李廷馣)과 구계우(具繼禹)를 추가배향하였다. 1960년경 수몰지구로 되어 현재의 위치에 이건하였다.
청양에서 넘어오는 길목의 청천호에는 아름다운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그냥 찻길과 옆에 조그마한 인도가 있어서 걷기보다는 드라이브길로 괜찮은 곳이다. 화암서원은 이지함 그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설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갑자기 토정비결이 생각났다. 한국인들은 정초가 되면 가족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낡은 《토정비결》 책을 펼쳐들고 저마다의 괘를 뽑아보면서 한 해의 길흉을 점쳤다. 누군가 좋은 점괘가 나오면 함께 기뻐했고 나쁜 점괘가 나오면 서로 격려하면서 새해의 첫날을 보냈다.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던 토정 이지함은 1517년 (인조1년) 이곳 보령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