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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못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된 곳

성지 하면 대부분 내륙지방에 위치한 경우가 많이 있다. 왜냐면 조선조정의 관심에서 멀어진 곳에 모여서 천주교의 교리를 전파해야 했기 때문이다. 천안에도 깊숙한 산골에 있고 완주도 그렇고 당진이나 전주도 그렇다. 솔뫼성지나 신리성지는 탁 트인 곳에 있지만 역시 접근성은 낮은 곳이었다. 성지중에서 갈매못성지처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얼마나 있을까. 항상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성지라는 그런 느낌보다 잘 조성된 관광지를 만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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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보령까지 왔는데 바다를 안 보고 갈 수가 있겠는가. 대천해수욕장까지 가지 않아도 오천항에서 이어지는 해안길 도로는 멋진 풍광이 돋보이는 곳이다. 저 먼 바다에서 안쪽으로 쭉 들어오면 오천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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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과 사람을 피로써 받쳐진 다섯 분의 순교지 갈매못성지는 천주교의 성지로는 유일하게 바닷가를 보는 위치에 만들어져 있다. 말에게 물을 먹이던 갈매못에서 처형당한 다섯 명의 믿음이 있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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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에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하여 다블뤼 안주교는 1866년 합덕 거더리에서 화석두 루가와 함께 붙잡히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오매트르 오신부는 수원샘골에서 위앵 민신부는 합덕 세거리에서 주교가 잡힌 거더리로 찾아가 함께 체포되어 대원군에 의해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때 장주기 요셉은 같이 형장으로 보내질 것으로 요청하에 이 터에서 함께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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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못 성지 안쪽으로 오면 그들이 순교하게 되는 과정이 그림으로 표현이 되어 있다. 그림의 표현이 상당히 디테일하고 마치 작품처럼 그려져 있다. 갈매못은 갈마연이라는 말에서 연유된 것으로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라는 뜻도 있지만 갈매기 연못이라는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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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부들을 만나봐서 알지만 천주교는 상당히 많은 공부를 해야 신부가 될 수 있고 신부가 되어서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특히 라틴어 성경은 이들이 꼭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로 라틴어는 현대의 언어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라틴어를 공부하는 언어학자들이 많다. 라틴어의 어휘는 이탈리아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프랑스어의 총 어휘 90%에 그 어원으로 상속되었으며 영어의 총 어휘 60%에 문어로서 차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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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목을 잘라서 매달아놓는 것을 효시라고 하는데 효시는 효시경중의 줄임말로 참수나 능지처참 후에 행해진다. 대체로 대역죄인에게 내려졌으며, 보통 3일 동안 효시되었다. 효시형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참형·능지처참 등과 함께 폐지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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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시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서 이런 행동을 했을 때는 이같이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로 활용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효시될 수 있다는 것은 천주교도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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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못의 산역사를 접하고 다시 위쪽으로 걸어서 올라간다. 올라가면 갈매못 성지에서 참수당한 사람들의 모습과 남긴 말들을 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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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가장 무거운 형벌의 결과였던 효시(梟示)와 같은 단어로 효시(嚆失)가 있다. 사물이 비롯된 맨 처음을 비유하는 말인데 성지에서 죽음으로 천주교를 이어가려고 했다가 효시당한 이들이 결국 시작을 만들어낸 것을 보면 효시 (梟示)가 결국 효시(嚆失)로 이끈 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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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오천항에서 배를 타야 올 수 있었던 곳이 해안도로가 만들어지고 나서 불과 5분이면 차로 이곳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비탈길을 걸어서 내려간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이 가장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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