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지에서 만난 중용
거의 대부분이 녹색만 가득한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일반적으로 녹색의 싱그러움과 생명력이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는데 색채학에서 녹색은 중립적인 색에 속해 빨강이 뜨겁고 파랑이 차갑다면 녹색은 적당한 온도로 생각된다. 녹색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어둡고 탁한 녹색은 음울한 느낌을 주지만 밝은 녹색은 신록과 에메랄드, 투명한 녹색 바다를 떠올린다.
보령 성주사지의 색깔이 극명하게 두드러질 때는 봄과 가을이다. 봄에 완연한 녹색의 싱그러움이 있다면 가을에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끝맺음이 있다. 어느 색깔을 더 좋아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둘 다 다른 색감이 있어서 느껴지는 것이 모두 다르다.
이 너른대지에 대사찰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그 흔적의 기단만 남기고 있고 조금 남은 석탑과 옛 흔적만이 옛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놔두어야 할 것이 있다. 성주사지가 그런 곳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자연의 가르침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쉽게 잊는다. 말이 잘못 나가면 또한 잘못 들어오듯이, 재물도 잘못 들어오면 또한 잘못 나간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의 차이다.
녹색의 싱그러움과 비움의 미학을 생각해볼 수 있는 성주사지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을까. 사람의 도는 정치를 통해서 금방 드러나고 땅의 도는 나무를 통해서 금방 드러난다고 한다. 성주사지의 뒤편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서 성주산의 도를 만나볼 수 있다. 저 앞에 보이는 석탑 중 동 삼층석탑이 보물로 지정이 된 것이 2019년 3월 28일이다. 문화재청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21호로 지정했는데 이로 보령 성주사지(사적 제307호)에는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와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 이하 중앙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제47호, 이하 서 삼층석탑) 등 1기의 탑비와 4기의 삼층석탑이 국보와 보물로 된 것이다.
사찰에서 만물의 생성과 균형은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통 성실함은 가진 능력과 상관없이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중용에서의 성실함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실함을 스스로 자신을 완성시킬 뿐만 아니라 만물을 완성시키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자신을 완성함은 인자함이고, 만물을 완성함은 지혜로움이다.
성주사지에 자리했을 사찰을 처음 창건한 법왕은 백제 제29대 왕이다. 이름은 선(宣), 효순(孝順)이며 아버지는 혜왕(惠王)이다. 성왕, 위덕왕에 이어 왕권이 약화되면서 곤경에 빠졌던 혜왕이 죽은 뒤, 법왕은 종교를 통해 이를 풀어보고자 했으며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계율을 영을 내렸다. 그러나 즉위하고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며 부여 궁남지에서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서동설화의 주인공 무왕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