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선유구곡을 한가롭게 거닐다.
문경 선유구곡에 바람 산들거리고, 고운 물소리만 들려오는데 가야금 소리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저곳에 적혀 있는 시와 이름을 보고 있노라니 두보라는 시인이 생각난다. 두보는 약자를 동정하고 백성의 고통을 근심하며, 의를 지키는 정신으로 일관하였던 사람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흔적을 남긴 것을 보니 그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100년 전 나라가 망했을 때도 산천은 남아 있어 봄이라고 초목이 우거졌을 것이다.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니 꽃에도 눈물이 흐르고 계절에 따라 때로는 붉고 때론 옻칠처럼 검지만 자연의 법칙에 의해 달고 쓴 열매를 만들어낸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독립운동가 운강 이강년 선생 기념관에서 월영대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8.4km의 숲길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선량한 감정은 거의 모두 자연 속에 간직되어 있다. 이 방향에서 걸어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트래킹은 처음 해본다. 매번 위쪽에서 걸어서 내려왔는데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른 느낌이 든다.
‣ 제1곡 옥하대(玉霞臺)
白石朝暾相暎華 흰 돌에 아침 햇살 비처 밝게 빛나고
晶流寒玉紫騰霞 맑은 시내 찬 물결에 안개 붉게 오른다.
閒尋題字迷難辨 한가로이 새겨진 제자 찾기가 어렵고
只有白雲臺上遐 흰 구름만 누대 위로 저 멀리 자리하네.
‣ 제2곡 영사석(靈槎石)
以石爲槎喚作靈 돌로 뗏목 삼아 선령을 부르거늘
中流停著歲冥冥 시내 가운데 머무르니 세월이 아득하네.
傍崖又有仙人掌 벼랑 곁엔 또한 선인의 자취가 있으니
一路窮源指可聽 한 길로 원두를 찾아가면 만날 수 있으리.
개인적으로 옛 문헌과 사서삼경을 자주 읽는 편이라서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지가 않다. 주자는 우주의 구성 원리를 형이상학의 ‘이’와 형이하학의 ‘기’로 보았으며, 훈고학의 사상적 한계를 벗어나 우주론적인 체계를 정립했던 사람이다.
‣ 제3곡 활청담(活淸潭)
靜處從看動處情 마음으로 정처에서 동처를 바라보니
潭心活活水方淸 못 속이 활발하니 못물이 맑아지네.
本來淸活休相溷 본래의 맑은 마음 흐리게 하지 마라
一理虛明道自生 이치가 허명하면 도는 절로 생기리라.
‣ 제4곡 세심대(洗心臺)
虛明一理本吾心 허명한 이치가 본디 내 마음이거늘
枉被紛囂容染深 부질없이 세상사에 깊이 물들었네.
到得玆臺思一洗 이 대에 이르러 한번 씻길 생각 하니
肯留滓穢分毫侵 어찌 묵은 때를 추호라도 두겠는가.
마음을 씻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손과 몸, 얼굴은 자주 씻을 수는 있어도 마음을 씻는 것은 1년이 지나도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 제5곡 관란담(觀爛潭)
潭上湍流瀉作瀾 못 위 급한 물살 쏟아져 이룬 물결
到來潭處勢全寬 연못에 이르러선 그 기세 잔잔하네.
觀他有本元如是 원래 이와 같이 근본 있는 물결 보니
照得吾心一鑑寒 차가운 수면 위에 내 마음 비춰보네.
물을 바라볼 때는 반드시 그 단급처(湍急處: 물결이 급히 흐르는 곳)를 를 보아야 비로소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학문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는 자신의 내부부터 살펴야 비로소 크고 근본의 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 제6곡 탁청대(濯淸臺)
臺前流水絲漪橫 누대 앞에 흐르는 물 일어나는 실물결에
一濯長纓萬累輕 한 번 긴 갓끈 씻으니 온갖 근심 가벼워라.
想像損翁當日趣 손옹이 사신 그때 가진 흥취 상상하니
滄浪一曲玩心明 푸른 물결 한 구비에 완심이 밝아지네.
‣ 제7곡 영귀암(詠歸岩)
臨流盡日弄晴暉 물에 임해 온종일 맑은 빛 즐기다가
風浴隨時可詠歸 수시로 바람 쐬고 읊조리며 돌아온다.
不必沂雩能撰志 꼭 기우가 아니라도 뜻을 펼 수 있으니
巖臺自足振春衣 바위 누대 자족하며 봄옷을 떨치리라.
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제자들이 흔하디 흔하게 돈을 많이 벌며 권력을 쥐며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려고 했지만 세상의 근심 없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바람을 쐬다가 때론 노래를 하는 삶만으로도 적당하지 않은가.
‣ 제8곡 난생뢰(鸞笙瀨)
琮琤石瀨奏笙鸞 돌여울 물소리 난새의 노랫소리
縹渺仙踪底處看 저 아래 아득히 신선 자취 보인다.
從古閬林多怪秘 옛부터 신선 사는 곳엔 신비롭고 괴이하니
雲間鷄犬是劉安 구름 사이 닭과 개는 바로 유안이네.
‣ 제9곡 옥석대(玉舃臺)
全石跨溪鏡面開 시내가 흐르는 전석엔 거울이 열리고
凹爲泉瀑峙爲臺 파인 곳은 폭포 되고 언덕은 누대 된다.
仙人遺寫今何在 선인의 남긴 자취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應有雙鳧葉縣來 섭현에서 날아온 두 마리 오리가 있으리.
사람은 아주 짧은 한 때를 살다가 가지만 문경 선유구곡에 적혀 있는 9개의 시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영원히 사람들에게 기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