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pr 28. 2019

차의 레시피

2019 문경 찻사발 축제

물이 왜 흐르냐고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흐르니 흐르는 거겠지라고 지나치는 것이다. 차(tea)라는 것은 흐르는 물과 땅이 재료로 만들어내는 레시피의 음식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차나무에서 딴 잎을 우려내서 먹을 때는 따뜻한 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차가 원래 그렇게 뜨거운 물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기에 너무 뜨겁게 우려내면 차 고유의 성분이 파괴되어 그 효과가 적다. 차의 양에 따라, 물의 온도에 따라, 우리는 시간에 따라 그 맛이 다른데 어느 정도의 차의 맛을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찻사발이다. 

지금까지 와본 찻사발 축제장에서 이날이 가장 색감이 좋았다. 비가 온 다음날에는 색감이 가장 좋다. 모든 생물은 물을 충분히 머금었을 때가 가장 또렷하다. 사람 역시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혈색이 좋지 않다. 물을 충분히 먹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레시피는 규정해서 만드는 것보다 규정되지 않는 좋다. 차 맛이 지역마다 다르고 어떻게 우려서 먹느냐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어떤 차가 최고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비교적 소량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숙성을 해서 맛과 향이 일반적으로 좋다는 것이 가격대가 있을 뿐이다. 

그릇도 그릇에 따라 용도가 모두 다르다. 특히 도자기로 만들어진 찻사발은 특정 용도로 한 번 사용하면 그 음식만 넣어서 먹는 것이 좋다. 조금씩 조금씩 그 향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술을 담아서 마시기 시작하면 술만 담아 마시고 차를 담아 마시면 차만 담아서 마시는 것이 좋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하는 이유 역시 그 맥락에서는 비슷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문경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단양이라는 곳도 도자기를 굽는 곳이 적지 않은 곳으로 보아 단양, 문경 이 일 때는 모두 서민들이 사용했던 찻사발 등을 만들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찻잔은 차를 담기 위한 다기다. 그렇지만 마시면 비워진다. 그리고 다시 채우면 그 속에 차가 담기게 된다. 올해의 주제는 쉬고 담고 거닐다인데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그냥 문경에 스며들듯이 쉬고 찻사발에 차를 담아서 마시면서 거닐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올해의 찻사발축제에서는 흙 소재 체험장, 찻사발 그림 그리기, 어린이날 코믹 저글링 공연, 명장 핸드프린팅, 찻사발 아카데미, 왕의 옷을 입고 축제장을 돌아보는 왕의 찻자리, 얼쑤 플래시몹 찻사발 타임 1250등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감성 가득한 문경에서 열리는 문경 찻사발축제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아니 새로운 시작이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축제의 한계를 벗어나 민간이 주도하는 축제로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지역마다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축제는 2020년까지가 버전 1.0이고 그 이후에는 민간과 지역민들이 2040년까지 만들어가는 버전 2.0의 축제가 만들어져야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지자체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행사 위주의 축제보다는 체험과 함께하는 축제로서의 변신이 필요한 때다. 

사기장의 하루는 말 그대로 도자기를 빚고 만드는 시간이다. 비록 우리들 각자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다르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그 상이한 관점들을 하나로 엮기에 충분한 동시성도 존재한다. 질량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른다는 개념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들에게 적용된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만 물들다 보면 인생의 목적이 갑자기 흐려질 때가 있다. 쉽게 말하면 사는 재미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럴 때는 풍경을 쪼개고 시간을 쪼개고 의미를 쪼개다가 더 이상 쪼갤 수가 없는 시점에서 그 대상을 명확하게 바라보면 길이 조금씩 열린다. 

이제 축제는 개막식에서 지역인사나 지자체장이 축하의 말을 하고 연예인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폐막식에서도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하던 그런 형식에서는 벗어날 때가 왔다. 지역마다의 고유의 색깔을 살려 손을 맞잡듯이 멀리서 온 사람도 그 지역을 어루어만져볼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이 필요하다. 

투박하면서 순수함의 결정체였던 문경 막사발은 서민들의 전용 그릇이었던 문경 찻사발은  영원히 지속되는 꿈도 있지만 대부분 꿈이 현실이 되면 찻잔에서 비워진 차처럼 다시 비우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듯이 내일의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에는 시리즈로 영화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자에게도 문경 찻사발축제는 3부작이었다. 첫 번째는 희망으로 시작된 찻사발축제에서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보았으며 두 번째는 꿈으로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꿈을 품고 올해 2019년에는 재능과 노력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인생의 레시피를 만드는 방법을 엿보았다. 



이전 26화 백설공주가 사랑한 사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