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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 (九曲)

인생과 같은 문경의 선유구곡

인생에서 그 결과를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굽이가 9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입시, 진로, 입사, 결혼, 출산, 인생 2막, 인생 3막, 노후 등의 큰 굽이 사이에 중간 굽이가 있는 것이 인생이다. 계속 바닥이 하얀 너럭바위가 이어지는 문경 선유구곡은 외재 정태진(畏齋 丁泰鎭)이 붙인 이름이다. 그는 기미년(1919) 파리 만국평화회의에서 독립을 청원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달성에서 옥고를 치른 후 문경에 은거하며 독서로 평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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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의 계곡이 깊고 넓어서 더 많이 알려진 것도 사실이지만 문경의 선유구곡은 홀로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이런 때에 찾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문경 선유구곡은 옥하대(玉霞臺), 영사석(靈槎石), 활청담(活淸潭), 세심대(洗心臺), 관란담(觀爛潭), 탁청대(濯淸臺), 영귀암(詠歸岩), 난생뢰(鸞笙瀨), 옥석대(玉舃臺)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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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사회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다가 보니 무리하게 되고 결국에는 해서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돌 여울을 돌아나가는 물소리가 귀를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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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제자들은 벼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다고 답했는데, 제자 증점(曾點)이 대답은 달랐다. "늦은 봄에 봄옷을 지어 입고 어른 대여섯 명,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 기우제를 지내는 널찍한 곳)에서 바람을 쐬다가 노래하며 돌아오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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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이라는 것이 따로 있겠냐만은 자주 가고 싶은 곳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지만 시기에 따라서는 불법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도 멈출 수 있는 성숙한 개인주의를 지향한다. 그런 것이 요즘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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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 정태진보다 먼저 문경 선유구곡의 시를 지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앞선 시대의 낙은공(樂隱公) 신응회(申應會. 1800~1865)의 구곡 시가 있었다. 만송 신현옥의 시에는 제1곡이 우화교(羽化橋), 제2곡 영사암(靈槎岩), 제3곡 세심대(洗心臺), 제4곡 관란담(觀瀾潭), 제5곡 영귀암(詠歸岩), 제6곡 탁영담(濯纓潭), 제7곡 옥하정(玉霞亭), 제8곡 난생탄(鸞笙灘), 제9곡 옥석대(玉舃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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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선유구곡의 길은 일반인들이 걷기에는 부담이 없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걷기에는 어렵다. 아주 평범하게 걷던 길도 어떤 이에게는 힘든 길들이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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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화사하게 피는 꽃은 겨우내 물을 모으고 준비를 해서 마침내 결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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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몇 개의 굽이를 지나쳐왔는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문경의 선유구곡은 모두 지나쳐왔다. 때로는 흘러내려오는 물보다 빨리 가기도 하고 때로는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기도 했다. 신선이 놀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점이겠지만 적어도 물질적인 가치보다 자연이 가진 가치를 우선시했기에 신선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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