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내리기 힘든 길에서 민족성과 자부심의 원천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본다면 친일과 반일의 딜레마는 그렇게 크지는 않다. 오직 정치권에서 친일성향과 반일성향에 대한 혹은 친일과 한국우선주의가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친일 성향을 보이는 정치인들도 자신들을 친일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친일은 반국가세력만큼이나 터부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히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다.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의 칼이라는 쓴 책을 읽어보면 얼마나 다른 결을 가진 민족인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민족을 넘어서 결국에는 강자가 지배해 온 역사는 반복이 되어왔다. 즉 옳고 그름을 넘어서 강자를 향한 끌림이 있고 이는 권력지향성을 보이게 된다. 이는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기도 했다. 봉건국가, 근대국가, 민주국가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에 대한 갈망은 있다. 옳지 않은 힘에 대한 제어를 법과 도덕을 통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한민족과 일본민족이 발전해 온 역사는 많은 사람이 참전한 대규모 전쟁을 가능케 한 청동과 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어난 힘의 역사다.
각종 SNS등을 통해 친일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과 반일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친일을 하는 사람의 논리는 쇠락해 가는 조선왕조와 더 나아갈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있었다. 스스로 자정 될 수 없고 변화할 수 없는 이 나라를 일본이 들어와서 근대화시켰으며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을 주장한다. 반일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당시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었으며 일본이 강점하지 않았더라도 근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토론 프로에서 어떤 언론인이 이제 미국처럼 진주만 공습을 한 것을 잊고 일본과 함께 동맹을 맺고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건 완전하게 틀린 말이다. 진주만 공습을 받고 태평양에서 일본과 전쟁을 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뒤에 원자폭탄 두 개를 일본에 떨어트린 후 거의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 완전한 강자의 위치에 서 있기에 일본에 대한 용서와 동맹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도 아니고 전쟁에 참전해서 연합국과 함께 승전국의 위치에 서 있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역사적인 관계 속에서 미국처럼 일본을 대할 수는 없다.
반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2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의 사례를 든다. 오랜 시간 스스로 한 과오들에 대해 끊임없이 사과와 반성을 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도덕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국제관계에서 본다면 독일과 일본은 다르다. 독일이 승전국들에게 대하는 관점과 일본이 한국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이 보는 한국은 당시 제국주의 시대에 자신의 나라에 편입되어 대동아공영권의 일환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은 일제강점기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반일에 대한 감정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위안부와 제국 신민 징용등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만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으로 덮혀졌다. 한국인들은 반일에 대한 감정이 폭발을 할 때는 각종 체육경기를 할 때다. 특히 축구와 관련된 경기가 열릴 때는 마치 모든 이의 마음이 같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한국인들이 한국과 일본의 오랜 역사와 그 뒤틀림을 아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인 성격이 반영이 된 것이라고 본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다. 스포츠경기를 보더라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국가대 국가에서도 드러나는데 특히 일본이 대상이 된다.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은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못한 문제가 있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성향도 한몫을 한다. 일본인들은 일부 극우정치인들을 제외하고 한국에 대한 악감정이나 역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인들이 가진 본질적인 성향일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지고 못 사는 성격은 수면아래에 잠들어 있었더라도 어떤 시점만 되면 다시 불거지게 된다. 반일을 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일본이 태도를 취하고 한국에게 충분한 사과와 배상등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필요가 있는데 일본에게 그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국제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강자에 대한 열망과 약자에 대한 연민이 격렬하게 오가는 삶을 산다. 보통은 강자에 대한 열망이 더 큰 힘으로 작용하지만 약자에 대한 연민은 금방 잊힌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급하게 타오르다가 쉽게 사그라든다. 정말로 필요한 변화가 있을 때 큰 동력으로 작용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쉽게 잊히면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국인들은 개개인의 자부심이 대단하기에 어떤 존재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교하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친일과 반일의 극명한 대립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이 가졌던 힘에 대해 매료되는 사람도 있고 도덕적인 관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에 대해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과 정의사회 구현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강자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멸시를 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친일과 반일은 독특한 한국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강자가 만들어놓은 질서 혹은 결과에 대해 찬양을 하면서도 도덕적인 흠결 혹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정이 없다면 인정하지 못하는 독특한 한국인의 성향에 대해 언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