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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자를 꿈꾸는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거다.

서점에 가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섹션은 돈과 관련된 것들이다. 시기에 따라서 유행하는 코인이나 부동산, 주식 등 부자가 되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쓸모 있는 책들은 거의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루틴과 습관이 있는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의 습관을 뇌에 이식하지 않은 이상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들 그 책을 읽는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부유해지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습관은 버리지 못한 채 읽어봐야 자신에게는 무용한 책들을 읽는 것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기 확신 때문이다.


한국에서 계속 부자라는 기준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도 매우 이상한 기준이다. 부자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다양한 가치관이 있고 추구하는 바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순간 그럴듯하게 사람을 끌어들이고 쓸모없는 것을 사게 만들고 사람들의 생각을 가두어둘 수가 없다. 눈으로 보이는 수치가 있어야만 사람은 다른 가치를 외면한 채 그것만 보게 만든다.


방송이나 언론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공정의 가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정 같은 것은 관심이 없다. 그냥 어떻게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도 공정이라는 것을 넣기 위해 피해당한 사람이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시사프로로 다루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유튜브로도 수많은 영상을 보았지만 수준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보다는 어그로를 끌 수 있는 것들만 난무하다.


중위소득이나 평균소득, 상위 10%의 소득 같은 것이 왜 의미가 있을까. 법적인 결혼을 할 이유가 왜 있을까. 결국에는 스스로 어떤 소비를 해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부자가 왜 되어야 하는지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많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들만 넘쳐난다. 워런버핏과 같은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돈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돈이 많은 것은 어떤 시점에서 부의 비중이 특정사람에게 몰려있을 뿐이다.


차량을 구매할 때도 소득대비 어떤 차량을 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송이나 글도 수없이 생산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소득과 차량구입과는 관계는 없다. 스스로가 가치를 두는 것에 소비를 많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집에 살던 전세나 월세를 살든 간에 자신은 차량이 너무나 좋다면 그걸 구매하면 된다. 그리고 그 결정을 스스로가 책임을 지면 될 뿐이다. 그 결정을 타인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도 없고 평가할 이유도 없다.


부자라는 것은 매우 상대적인 가치다. 부자는 그냥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일 뿐 정당성이라던가 공정, 노력과는 전혀 별개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돈을 들여서 좋은 차를 타고 이른바 명품을 소비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생각하는 타인의 생각은 바꿀 수는 없다. 애초에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바꾸려고 애를 쓰게 만드는 것은 자본이며 언론이다. 그렇게 생각되게끔 만들어야 자신들이 돈을 버는 것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기본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이 매월 들어온다는 가정아래 내면이 채워지면 시실 필요 없는 소비는 안 하게 된다. 아이가 있는 집안은 사교육비라는 것이 있지만 사실 그것도 남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지출하는 것도 크다. 왜 남들만큼이라는 것에 목을 맬까. 시간이 지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며 홀로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남들처럼 이라는 것은 남들보다 더 돋보이고 싶지만 그 정도는 힘드니 적어도 수준은 맞추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왜 남들보다 더 돋보여야 할까.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부자에 목을 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얼 채우고 무얼 비울 지를 고민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내면을 채우면 채울수록 겉모습으로 채우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게 된다. 누군가가 어떻게 보든 간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은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도 내포가 되어있는 것으로 누군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얽매여서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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