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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라멘가게-1

by 코붱

[금요일 밤의 심야 괴담 코너! 이번 주 주인공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라디오에서 나오던 DJ의 경쾌한 목소리가 순간 한 톤 낮아졌다. 대성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음량을 한 두 단계 더 크게 키웠다.



[살면서 한 번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저도 한때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포기하고 이대로 삶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한 그 순간, 한 미스터리한 가게가 눈앞에 나타났어요.]



귓가를 간지럽히듯 부드럽게 이어지던 DJ의 목소리가 다소 딱딱해졌다. 아마도 사연 내용에 따라 목소리의 분위기까지 자유자재로 바꾸는 모양이었다. DJ는 조금 어둡지만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배경음악에 맞춰 한 템포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제대로 된 간판조차 없던 그 가게에서는 보기만 해도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따뜻한 빛과 함께 맛있는 냄새가 문틈 사이로 솔솔 비집고 나왔어요. 순간 너무 배가 고파진 저는 뭔가에 홀린 듯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차분하게 흘러나오던 몽환적인 음악이 어느새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다소 경직되어 있던 DJ의 음성도 점차 원래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서서히 돌아갔다.



[앉자마자 곧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제 앞에 음식을 내주었습니다. 라멘이었어요. 원래 라멘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날따라 그 라멘이 너무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앉은자리에서 라멘을 후루룩 다 먹었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가만히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던 대성의 눈이 서서히 크게 뜨였다.



[그날 먹은 라멘이 너무 맛있어서 다음날 다시 그 장소에 갔지만 가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어요. 저는 그날 꿈이라도 꾼 걸까요? 그러기엔 가게에서 결제하면서 받은 카드 영수증은 사라지지 않고 제 지갑 속에 남아 있습니다.]



조용히 흐르던 피아노 선율이 서서히 잦아들고 원래의 통통 튀는 밝은 음악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DJ가 말을 이었다.



[자, 여기까지가 사연자분의 사연이었는데요! 사실 이런 비슷한 사연이 요즘 SNS에도 화제를 일으키고 있죠? 다들 그 가게에서 결제하며 받았다는 영수증을 인증샷으로 찍어서 SNS에 올려주시는데요. 중요한 건 가게 이름도, 주소도 심지어 먹은 라멘의 종류도 전부 제각각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것 같네요.]



손바닥만 한 수첩에 열심히 무언가를 받아 적던 대성의 손이 이어지는 DJ의 말에 순간 뚝 멈춰 섰다.



[그런데 딱 하나! 그 미스터리한 라멘집을 실제로 방문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바로.....!.. 모두 '죽고 싶을 만큼 너무 힘들었던 날' 갑자기 눈앞에 가게가 나타났다는 점!]



대성은 자신이 적은 메모의 내용을 가만히 눈으로 훑었다.



'죽고 싶었던 날'


'미스테리한 가게'


'라멘'


'다음날 사라짐'



휘갈기듯 적힌 단어들을 바라보던 대성의 입에서 저도 몰래 작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라멘 가게라니. SNS의 해쉬태그처럼 정말 그런 '환상의 라멘가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요? 진짜로 있다면 저도 그런 가게를 언젠가 가볼 수 있을까요? 아, 그러려면 우선 제 삶이 무척 힘들어져야 하는 거니까 그건 그것대로 조금 고민이 되네요. 자, 이쯤에서 노래 한 곡 듣고 오겠습니다-----뚝.]



대성은 라디오 어플을 끄고 그대로 침대 위로 다이빙하듯 쓰러졌다. 출렁, 하고 침대가 한 번 크게 흔들리며 뽀얀 먼지가 공기 중으로 살짝 일었다.



'이렇게 누워있을 시간이 없는데....'



힐끗 쳐다본 탁상시계의 바늘은 어느덧 숫자 10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가게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지금부터 서두르면 여유는 좀 없더라도 늦지는 않을 것이었다.



대성은 손바닥 안에 들고 있던 수첩을 바지 주머니 안에 구겨 넣고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의자에 걸어둔 얇은 여름용 바람막이를 몸에 아무렇게나 걸치고 두 세발자국만 걸으면 있는 현관으로 서둘러 나섰다.



오늘은 감자와 당근 같은 식재료들이 가게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가서 일을 시작하는 편이 사장의 잔소리를 피하는 방법이라는 걸 얼마 전에야 파악한 대성은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아니, 실은 대성은 그보다 방금 전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의 내용을 사장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가 더 고민되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한 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을 선사하는 최고의 라멘을 먹을 수 있는 그 가게는 대성이 얼마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인가....'



한밤 중에도 아직 낮의 열기가 가득한 바깥공기에 목 끝까지 잠근 재킷의 지퍼를 쭉, 내리며 주머니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꺼내든 대성은 스멀스멀 땀이 배어 나오는 목 뒤로 선풍기를 쐬며 한 달 전, 자신이 그 가게에 처음 발을 들였던 순간을 조금씩 떠올렸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이 세상을 등지고자 마음먹었던 그 최악의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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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