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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Oct 13. 2024

이때 이 국수.

너무나 냉정한 강동 도서관 - 가락국수.

중학교 때였다.

공부해보겠다고 새벽 다섯 시에 가방 챙겨 강동 도서관에 줄을 서서 아침 6시에 열람실에 입장했는데

자리에 앉으려고 가방을 열자 튀어나온 야채크래커 ( 반 먹고 테이프 갈무리 했던)가 테이프가 풀어진 채로 떨어지길래 하나를 자연스럽게 입에 넣었는데 관리하시는 분이 "나가세요"라 해서 새벽에 줄 서고 입장하고 10분도 안돼서 나왔다. 새벽 어둑어둑한 골목길 어디선가 진한 멸치국물 냄새가 났었는데 야채크래커로는 안 채워진 나에게 무척 유혹적이었다.

가을엔 커피 커피 하지만 가쓰오 부시 넣은 달큼한 국물 냄새도 매력적이다.

오늘 이른 아침 브런치에 가락국수를 써야겠다 생각해서 눈뜨자마자 육수를 얹었다.

육수 : 멸치 한 움큼, 대파 두 줄기, 다시마, 우엉. 무

원하시는 재료 쓸 수 있는 재료 하시면 됩니다. 굳이 똑같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재료들을 베주머니에 넣어 주세요. 무랑 다시마만 있어도 좋답니다.

무를 제외한 재료를 다 베주머니에 넣고 일단 끓여야죠.

이리 준비해 놓고 중불에 올리셨다가 약불에서 1시간 정도 끓여 주세요.

육수 내는 동안 저는 겨울옷 정리를 했답니다.

한참 겨울옷 정리를 하다 일시 멈춤.

저는 작년 가을, 겨울  그리고 올해 봄, 여름 불면증이었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으며 설핏한 잠에도 꿈을 늘 꾸었기 때문에 힘들었었습니다.

그런데 불면증인 제가 잠옷이 20벌이 넘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 내가 자고 싶었구나 힘들었구나 잘 버텼네' 란 맘이 들면서 울컥 슬펐답니다.

그저께 손님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 카페 사장님들이 공황장애에 많이 걸리신데요'란 이야기를 했었는데

저녁 잠자리에 누워 공황장애의 증상을 살펴보니 작년에 제가 겪었더라고요.

"왔다 갔구나 아니면 왔다가 잠깐 쉬나"

작년 초가을 에어컨이 방방 돌아가는 가게에서 브런치 지원 글을 쓴다고 앉아서   이마에서 키보드로 뚝뚝 떨어지던 땀이 생각났었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서 가만히 앉아서 차분히 울었었습니다.

'너 힘든 일 있잖아 이렇게 겪어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겠니 괜찮아 겪어'

하면서 지나갔는데 그게 공황장애 증상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아침녁에 은은한 육수 냄새가 떠돌 때쯤 옷정리도 끝났고 오두막히 앉아서 저를 제가 칭찬하는 시간을 갖었답니다.

육수를 다 냈으면 가락국수 끝인데.....

저희 가게 건물주님께서 몇 달 전에 주신 소힘줄이 있어서 써보려고요.

장소를 옮겨서 가게에서 소힘줄 작업 들어갑니다.

저는 땡땡 언 소힘줄이니 일단 해동했습니다.

찬물에 담가서 핏물 뺏고요.

압력솥에 30분 삶으라고 해서 가게에 있는 인스턴트 쿡? 압력으로 월계수잎과 생강 넣어 50분 돌렸습니다.

야들야들하게 잘 익었더랍니다. 소힘줄 가격도 좋고 맛도 있고 해 보세요 안 하셔도 되지만.

이리해서 다시 집.

육수 빼놓은 것에서 가락국수분량의 육수를 덜어 내서 ( 가쯔오 부시를 넣을 거라 )

가쯔오 부시와 어묵, 계란 등 넣고 싶은 재료를 준비해 주세요.

가쯔오 부시는 다시팩에 넣어서 준비했어요. 어수선하죠 그분이.

국물이 끓는 동안 간을 해주세요

보통은 쯔유로 하시는데 가쯔오 부시를 넣고 또 쯔유를 입히면 투머치 달큰 해져서 저는 그냥 샘표 701로 합니다. 살짝 날카로운 맛이 나는데 전 그 거슬림이 좋더라고요.

가쯔오 부시 팩 넣고 십 분 정도 약불에 국물 우리는 동안 면 아서 준비해 주시고

면 넣고 어묵 계란  얹어 주시고 육수에 소힘줄 있으시다면 한번 토렴해 주시고 소힘줄 안 하셨으면

패스하시고 육수 부어 주세요. 제가 쑥갓을 넣었는데 후들후들 저 시들한 쑥갓이 주제에 오천 원 이더라고요.

정말 브런치 아니었으면 대파만 넣어 먹었을 텐데 말이죠.

고춧가루 넣은 게 훨씬 맛있어요.

가락국수 시판 제품으로 드시면 편하시긴 하겠지만 커다란 냄비에 육수를 끓이고 온 집에 달큰 짭조름한 향이 도는 가을 아침도 그럴듯하고 분위기 있으실걸요.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의 맘을 헤아리는데 일 년이 걸리네요.

한 번도 겪지 않았던 감정의 늪에서 이제는 그 사람이 힘들까 봐 걱정이 되기도.

"너도 만만치 않을 텐데 참 기적 같이 서로 모르는구나" 싶어요.

어긋났지만 귀중한 기억이고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었으니 기다려 보려 합니다.

다들 장사 안돼서 공황장애인데 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강동도서관의 냉정함도 기억하려고요.

도서관 가방에 과자 싸가지고 다니지는 않을 거예요.

그 새벽의 중딩은 오전 일곱시에 집에 돌아 왔는데 가족분들은 죄다 주무시고 계셨고

저는 해피라면을 끓여서 먹고 빨간 머리 앤을 보고 실컷 잠을 잤습니다.

강동 도서관 잊지 않을거예요.


드리는 말씀.

연재를 조금 쉬었다 해보려구요.

너무 많이 쓰는것 같아서 .

당분간 쉼을 갖고 천천히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찾아서 길을 내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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