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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Oct 06. 2024

이때 이 국수.

즐거운 편지. - 사소한 다정한 맛, 장칼국수.

제일 먼저 육수를 올려놓고 썰을 풀어 볼까요?

저는 디포리, 다시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준비합니다.

디포리 다섯 마리, 다시 멸치 한 줌, 다시마 손바닥 크기애 물 2L로 센 불에서 시작해서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1 시간정도 끓이시면 됩니다. 취향껏 북어 대가리도 좋고 새우도 좋고 가풍과 취향에 맞춰서 육수 끓이세요.

육수를 올려놓으시면 시래기, 얼갈이 혹은 솎음배추, 청양 고추, 다진 마늘, 된장을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화룡정점으로 소고기 샤부샤부용으로 준비해주세요. 물 700ml에 된장 30g. 정도면 알맞습니다.

(2인 기준) 청양 고추는 다대기로 사용하세요.

 

배추가 요새 너무 비싸지만 시래기는 가격이 아직 안 오른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상추 시들시들한 게 스무 장 정도에 세상에 6000원을 훌쩍.

값이 비싼 건 참을 수 있지만 비싼 주제에 싱싱하지 않은 건 정말 짜증 돋는 일이죠.

일단 시래기를 3cm 정도 길이로 자르시고 된장과 마늘에 버무려 놓아 주세요.

저는 들기름을 조금 넣었습니다.

양지 샤부샤부용 냉동 소고기예요.

국물에 넣기에는 이만한 게 없어요.

얼핏 기본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수다를 떨어볼까요?

가을이니까 또 우린 감성인 이니까 시 한번 보고 갑니다.

황 동규님의 즐거운 편지.

저는 박신양 님이 영화에서 즐거운 편지를 읽기 전 중학교 2학년쯤에 즐거운 편지를 읽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제가 할 사랑에 대해서 나름의 꿈을 품었습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황동규, 즐거운 편지 -    중에서

중학생에 맘에 꽂힌 사랑은 사소함으로 부르는 그대였답니다.

사소함이란 단어에 담겨있는 다정함이 저를 매료시켰었습니다.

그 결과 내내 나이 오십이 된 지금까지 사소함을 품은 사랑을 꿈꾸니 , 대책 없지요.

20대부터 길게 한 짝사랑에 몰두해 있을 때에도 사소했습니다.

뉴욕 근사한 곳보다는 구질스런 반지하 집에서 밥 해 먹고 같이 tv 보고 커피 마시고 그리 좋았을까요?

김밥 좋아한다던 그의 말에 지구 한 바퀴 돌릴 만큼의 김밥을 쌌고 바느질 하나도 못하면서 패션학과 오빠에게 이 구박 저 구박 들어가면서 테이블보를 만들고 편지를 쓰고 결과야 틀어졌지만 전 그런 사소함을 간직한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보석 같은 시간이었죠.

짝사랑을 하는 동안 못난이 동생 짝사랑이 안타까워서 선배 오빠들이 자꾸 누군가를 끼워 넣어 주기도 했는데

제가 노를 젓기에는 너무 물이 좋아서 멀뚱멀뚱 인연을 잡지 못했나 싶습니다.

물 좋으신 분들은 제 취향이 아니었던 걸로.

그래서 항상 친한 재승오빠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렸죠 " 경남이는 물이 꽉 찼는데 들어오는데 노를 안 젓는다.  가라앉지도 않고 동동 떠있어 물이 찰랑거려도 몰라 저 계집애는!"

물 좋은 분들보다 제가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인연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딱히 힘도 없었지만.

늦은 나이지만 고단함을 갖고 내게 오는 사람과 같이 먹고 싶은 것  해 주고 싶은 음식이 뭘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 장칼국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뭔들이겠지만 파스타보다는 다정하고 짜장면보다는 격조 있고 뜨듯한 국물도 있고요.

우리 육수 뺐고 시래기 양념 만들기까지 했나요?

육수 두 컵에 쌀뜻물 한 컵을 준비하세요. 면이 익으면 물을 가감해서 더 넣어 주시면 됩니다.


육수와 쌀뜨물에 양념한 시래기를 넣어서 8분 정도 끓여 주세요

그대의 칼국수가 칼국수가 되느냐 풀죽이 되느냐는 면 물에 헹구기로 좌우됩니다.

육수가 발발발발 끓으면 잽싸게 면을 찬물에 담갔다가 잽싸게 낚아채서 흐르는 물에 헹구고 육수에 바로 투하하세요. 빨리빨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세요.

육수에 넣으신 후 면 ( 익는데 시간이 상당히 결리니 조급하지 마세요. 불은 중불이 제일 알맞은 듯하옵니다)

이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실 때 얼갈이나 솎음배추를 넣어 주세요.

배추가 풀이 죽으면 바로 준비했던 고기를 넣어 주세요.

저는 고기양을 많이 잡아서 면반 고기반이었어요.

고기를 넣으면 국물이 묵직해지고 감칠맛이 살살 돌아서 조금 믿음직한 맛으로 물론 조개도 버섯도 괜찮으세요. 고기를 넣은 후 너무 오래 끓이면 맛이 없어요. 고기가 얇으니 금세 익히시고 마무리하세요.

국물양에 비해서 된장양이 적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칼국수 면에 소금 꽉 차게 들었으니

막판에 간을 더하시더라도 처음에는 심심하게 여백을 주시는 것도 포인트입니다.

점점 언제 더웠나 싶게 싸늘해지는 날씨에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식탁에서 무릎 닿아가면서 따뜻한 장칼국수 드셔 보실까요? 좋겠다.ㅠㅠ

여러분의 사소한 사랑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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