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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Nov 30. 2024

그녀의 점심 -10

처음이라 놀랐다. - 멸치 국수.

가게 시작한 지 5년이 넘어가는데 진작 겪어야 할 일을 너무 늦게 마주했습니다.


오픈 두 시간 전, 

가게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데 커플 손님이 오셨습니다.

음식이 준비된 게 없어서 당황했지만 수프를 원하신다고 해서 수프는 가능하니 두 개를 준비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멍청한 사장이 수프 가격이 7천 원인지 8 천 원인지가 헷갈려서 손님분께 앞에 가격표를 확인해 주십사 부탁드렸는데 남자분이 갑자기 주먹을 그녀를 향해 들어 올리시면서 "자기를 띄엄띄엄 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녀는 순간 얼었고 여자분이 살살 "그러지 마"하시면서 남자분을 달래셨습니다.

그녀가 수프를 준비하는 동안 잠시 편의점이 다녀오시겠다면서 나가시고,

수프를 데우고 그릇을 꺼내고 테이블 세팅 준비를 했습니다.

다시 돌아오신 손님커플은 "포장"이었다고 그녀는 순간 당황했으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또 잘못 들었군' 했습니다.

포장 용기를 꺼내서 수프를 담는데 남자분이 지속적으로 맘에 걸리는 말을 하십니다.

" 검은 비닐봉지에 그냥 담아요"

"우리가 편의점에서 삼십 분을 있다 왔는데 이게 뭐야"

"그냥 검은 비닐에 담아"

여자분은 살살 남자분을 달래시면서 "오픈하기도 전에 우리가 와서 우리 잘못이야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녀는 머릿속이 하얗게 하얗게 되었습니다.

" 저는 여기서 드시는 걸로 알고 있었고요, 분명히 테이크 아웃이라고 말씀 안 하셨어요. 그리고 제 뜨거운 수프를 검은 비닐에 담아서 팔 수는 없어요"

말을 마치고 표정이 없어진 그녀는 천천히 수프를 용기에 담고 크루통까지 구워서 수프에 넣으려 하니

남자분이 한 풀 꺾인 목소리로 "그거 따로 주세요" 하셨습니다.

무슨 맘인지 그녀는 수프 용기에 스티커까지 붙이고 크루통을 종이봉투에 넣어 수프와 함께 건네드렸고

"저희 와이프 너무 예쁘죠?" 라 말씀하시는 남성분께  " 아름다우시네요"라 답하고 그분들은 떠나셨습니다.

그분들이 떠나시고 그날의 메뉴인 클램 링귀니를 만들어 인스타에 올리고 나서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날은 서울엔 눈이 많이 왔고 제주에는 비바람이 거셌고 그녀의 손은 덜덜 떨렸습니다.

주저앉아서 커피 대신 둥굴레차를 한 잔 들고 그로부터 네 시간을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 같은 건 없었습니다.

험한 날씨 탓인지 오후 두 시까지는 손님이 없었고 빈 가게에서 덜덜 떨리는 손을 남의 손 보듯이 내려 보다가 뜨거운 차를 마셨습니다.

두시정도에 첫 손님을 맞았고 세시 넘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게 멸치와 다시마를 꺼내서 같이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허기는 느껴졌으나 맛이 나는  것이 ( 맵고 달고 짜고 시고) 싫었던 것인지 무미한 맛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멸치 몇 마리를 넣고 다시마를 넣어 설설 끓여서 육수룰 준비하고 면을 삶고 냉장고에 있던 체 썬 무장아찌를 넣고 양념장을 넣고 젓가락을 꺼내고 다시 우두커니 앉았습니다.

'먹어야 하나?'

국수가 피워내는 김을 바라보다가 이 생각 저 생각이 겹쳐 기분은 떠오를 생각이 없는 듯 가라앉았습니다.

국수 몇 젓가락을 먹고 비바람이 씽씽한 거리로 나가서 과외 교재를 사고 비를 쫄딱 맞고 돌아와서 몸을 데우고  저녁 테이블 예약 준비를 했습니다,

예약 손님은 제주도에 계실 때부터 너무 감사하게 곱게 그녀를 찾아 주셨고 제주도 떠나시면서 마지막 식사를 우리 가게에서 하셨고 서울로 가서 결혼을 하셨고 결혼하시고 제주도에 오실 때마나 찾아 주셔서 애틋한 분이셨습니다. 서울에서 험한 비행기 타고 오셨다는 디엠을 확인하고 새큼한 게 어떨까 싶어 세비체를 만들고 홍차를 드리겠다 준비를 하면서 또 다른 고운 손님을 맞았습니다.

씩씩하고 멋진 이 분은 계산하고 나가시면서 "칠천 원이었네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인스타에 대강 쓰거든요 그날의 사건을 ) 한 번 웃고 서울에서 오신 달큼한 손님의 (신랑분과 오셨으니) 단내에 취해서 웃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녀의 가게 건물주님이 그날 오후에 가게에 들르셔서 이런 일이 있었다 말씀드리면서 제 손님분들이 소금 뿌리라고 하시는데 소금뿌리면 될까요? 제 소금 비싼 거라 아까워요" 했더니 

"주차장 위 항아리에 천일염 가득 있어 바가지로 퍼서 뿌려 " 하셨습니다.

오 년 만에 등장하신 특이한 손님 덕에 오늘도 그녀는  감사함을 배웁니다.


인스타에 이 이야기를 올리고 댓글로 디엠으로 흥분하셔서 감사하지만 죄송했습니다.

모자란 그녀 대신 더 흥분해 주시고 안타까워해 주시는 맘이 감사하고 죄스럽습니다.

그래서 조곤조곤 더 못써요! 다들 정의의 사도들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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