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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Nov 28. 2024

그녀의 점심-9

적당히 슬프고 괜찮게 우울할 때- 굴 세비체 와 바게트


성준이가 회사 직원들 한국 파견 근무 나왔다고 점심 예약 했는데

가게에 맞는 인원수가 아니라 테이크 아웃으로 예약 변경하고.

한참 점심 장사 치르고 (하필이면 손님이 많았답니다)  정신없이 정리하고 있는 중

전화 와서는 "샌드위치 20개 지금 힘들지?" 하는데

"지금은 곤란한데 미리 연락 주지" 하니까 잠시 전화 끊었다가 다시 해서는

"우리 직원 가면 그냥 솥째로 팔아 솥 그대로 줘 아마 설거지해다 줄 거야"해서 "응"했습니다.

두 시간정도 지나 수려한 분이 걸어 들어오셔서는

"솥째로 주세요 " 하길래 솥단지 세 개와 미리 준비해 놨던 닭다리 구운 걸 넘겨주었습니다.

(닭다리 구이는 서비스였어요.. UN 소속 군인들이라 해서 특히 중동분들이 계시다 들었기 때문에)

"계산은 chief 님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네 , 주시겠죠"

그렇게 내 솥단지 세 개와 닭다리들은 수려한 분과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혼자 남은 그녀는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거야. 잘하면 좀 뜯어 낼 수 있겠다'

하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느라 어지러웠습니다.

어지러운 중에 성준이 전화해서는 " 입금했어"

"얼만 줄 알고?"

"그냥 했어 많으면 많은 대로 받고 적으면 적은 대로 받아 인마"

전화 끊고 확인하니 세상에 어림잡은 가격보다 네 배가 많았더랍니다.

그렇게 어제는 그 순간엔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설거지한 솥 돌려주러 더 수려한 남성분이 등장해서

그녀는 꿈꾼 듯 좋은 날이었습니다.


오늘 새벽.

그녀는 밤새 잠을 못 이뤘고 성준에게 음식값에 십만 원을 더 붙여서 받겠다 말하고

나머지 금액을 돌려주었습니다.

"사람 서운하게 생일이라며 " 말하는 성준에게 "우리 생일선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야 십만 원이면 충분해"

하고 나름 단호하게 정가 플러스 십만 원에서 어제의 일확천금을 종결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서울에는 눈이 왔다고 인스타엔 죄다 서울 눈 풍경 사진이 올라오고 제주도는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그녀는 가게에서 장사 준비 해놓고 앉아있는데 성준이가 맘메 걸렸습니다.

비는 울적하게 내렸고 바람이 시리게 서글펐습니다.

기분이 착 가라앉은 날, 손님 없는 날.

그녀는 좋은 해 먹고 쉬어볼까..... 해서 세비 하기로 했습니다.

세비체는 스페인, 페루, 멕시코 등에서 해산물에 라임, 레몬, 허브를 넣어서 즐기는 음식입니다.

그래 굴 세비체 가자.

굴.

미국은 굴이 비쌉니다. 흔하지도 않습니다.

재승오빠가 허드슨강가에 있는 시푸드 뷔페를 굴 먹자고 해서 갔었는데 오빠의 검정 아르마니 코트에서

칼 빼듯 꺼낸 풀무원 초고추장에 우리는 어쩔 줄 몰라 웃었고 오빠는 당당하게 접시를 위에 초고추장을 덜어냈고 굴껍데기는 삽시간에 산처럼 쌓였었습니다. 굴 먹는 내내 소주를 그리워하며 보드카에 레몬을 넣어서 쉬지 않고 마시던 백재승.

누가 봐도 우리가 봐도 진상이었는데 매너 좋은 재승오빠는 뭐 무사 통과하던데요.

매우 깍듯이 하는 진상짓은 매력 있더라고요.


굴 세비체는 따뜻한 바게트차가운 버터 위에 같이 먹는 게 최고랍니다, 이 온도 조합이 중요해요.


생굴이랑 바게트에서 고개를 갸우뚱하신다면 일단 드셔보시라 권합니다.

만들기는 너무 쉬운데 뽀대도 납니다.

요새 귤이 흔하니 귤을 넣어 봅니다.

재료로는 생굴, 토마토, 황금향 ( 여기는 제주. 황금향을 주고 가셔서 ) 청양 고추, 딜, 이탈리안 파슬리

- 허브 종류는 개인 취향껏. 그리고 타바스코

생굴은 굵은소금을 설렁설렁하게 뿌려서 설렁설렁 닦아 맑은 물로 헹궈 체에서 물기 빼시고

나머지 재료들은 주사위모양으로 고추는 잘게 썰어 준비해 주시면 재료 준비 끝입니다.

고추가 얼얼하게 매워야 제 맛이 납니다.

타바스코를 때려 부으시면 조리 끝.

여기서 잠깐!!!

ㅎ ㅎ 애정하는 손님이 주신 바게트인데요 몇 달 되었는데 냉동했다가 오늘 해동해서 구웠는데

여태껏 제주에서 먹은 어떤 바게트보다 맛있었어요.

세비체 얹어 레몬 홍차와 세 쪽 해치우고 나머지 두쪽은 버터와 커피와 함께 즐겼답니다.

바게트는 절단해서 오븐에 굽고 버터를 바르세요.

저는 버터를 고르게 펴 바르지 않아요.

차가운 버터를 턱턱 바르고 세비체를 살짝 얹어 드시면 됩니다.

딜이 있어서 위에 살짝 얹어 봤네요.

없으시면 파슬리, 바질, 쪽파 좋을 것 같아요.

와인이랑 먹으면 금상첨화겠으나 전 영업시간이라 홍차와 먹었답니다.

연말이고 뽀대 나게 그럴듯하게 접대테이블 요리로 근사 하실걸요?

유혹적이죠.

성준이가 브런치 그녀의 점심을 읽는 게 맘에 자꾸 걸리네요.

괜히 서운해하지 말고 그대 돈 굳은 것만 생각하세요.

그녀도 그 돈으로 선글라스 살까 해서 어제 검색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선글라스 사지 말아라. 성준. 사달라는것 아닙니다.

그대 회사는 직원분들 인물로 뽑나 봅디다.

아주 나이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루두루 가지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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