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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밥.

by 남이사장 Feb 10. 2025

눈이 가득히 내렸고 사람들은 한가했고 아침부터 가게에 나가 부지런을 떨던 나는

오후까지 내내 혼자 가게를 지켰다.

아침 출근길에 가게 앞에게 보기 좋게 미끄러졌는데 물론 나 자신도 못 믿을 정도로 빨리 일어났지만

손목이 내내 아팠고 엉덩이와 허리도 뻐근했었다.

가게에 혼자 있으려니 우울함과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하지만 그 기분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아침 오픈 하자마자 '라자냐'를 하고 싶었고 ' 손님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란 기분에도 라자냐를 만드느라 오전 시간을 분주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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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손님이 없고 나른한 가게에서 배고픔이 찾아 왔다,

먹을 만한 걸 찾아서 뒤적거리다가 밀가루룰 꺼내서 수제비를 만들었다.

라디오에 우울한 빛의 음악과 더불어 대강의 수제비가 한 그릇 끓여 졌다.

건성건성 만든 수제비 한 그릇을 먹고는 오후 네시쯤에 가게를 나섰다.

엄마와 동생이 있는 저녁에든 뭘 해서 먹어볼까 싶은 맘에 이마트에 들려서 한 바퀴 둘러보고

이런저런 메뉴가 있었으나 내심 모든 것이 귀찮고 할 기운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밀키트 괜찮지 않나 한번 해볼까'

평상시에 늘 무심히 지나쳤던 밀키트가 눈에 들어왔고 이런저런 메뉴들 가운데 "병천식 순대 곱창 볶음'을 손에 잡아넣었다.

부대찌개를 둘러보았는데 송탄식, 의정부식으로 갈려진 내용물에 한 번에 포기를 했다.

선택 사항이 많은 건 왜 그런지 싫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해보는데 내가 처음 사본 밀키트는 구성물도 하나하나 포장된 바지런한 쓰레기물도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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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불리고 깻잎을 썰고 야채를 씻고 오래간만에 포장지의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시키는 대로 한다.

당근이랑 양배추가 왜 이리 많아. 양파도 없고 고추도 없네.

오지랖스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고추를 꺼내서 썰고 집에 있는 제육볶음도 조금 보태고 몇 가닥 심심하게 남아있는 콩나물까지 더해서 순대 곱창 볶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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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대로  - 난 처음 무언가를 접할 때는 군말 없이... 조리법 그대로 하는 편이다.- 떡과 양배추 당근을 볶고.

제육 넣고 순대 넣고 곱창 넣고 양념 넣고 마늘 넣고 콩나물 넣으니 그럴듯한 순대곱창볶음 완성,

양념에서 나는 불맛에 의아함을 가지고 '왜 불맛이 양념에서 날까'.

막상 상을 차리자니 국이 없어서 급하게 집에 남아 있는 육수와 파 계란을 풀어서 계란국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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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주말에 저녁식사가 마무리되었다.

밀키트를 구입한 것도 처음이었고 다른 사람이 만든 양념을 그대로 쓴 것도 처음이었는데

입에 가득한 msg의 억지스러운 맛도 생각보다는 느낄 수 없었고 순대는 큰데 곱창은 새끼손톱만 하게 들어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다 먹고 난 후에 집에 퍼진 불향은 계속 찝찝했다.

눈이 하얗게 내린 저녁에 별 다른 다른 수고 없이 상을 차릴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가끔은 이용해도 좋을 것 같았던 밀키트와의 첫 만남이었다.

편한 게 좋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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