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育兒)와 육아(育我)

by 무정인

대학교 과제로 가족계획을 세웠을 때, 나는 아이를 세명 낳을 거라고 말했다. 20대 후반이 되어 결혼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는 아이를 두 명은 낳아야겠다고 수정했다. 그만큼 아이들을 좋아했고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에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육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임신과 육아의 과정은 배신의 연속이었다.


불면증이 시작된 지 9개월 뒤에 임신을 했다. 휴직이 너무 간절했던 시기여서 임신 사실이 처음에는 반가웠다. 하지만 임신 중에는 멜라토닌도 수면유도제도 먹을 수가 없어서 힘든 밤을 보내야 했다. 출산 후에는 수유 때문에 아무런 약을 먹지 못하고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자 제왕절개의 고통을 너무 심하게 겪었다. 너무 우울할 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의 배를 굶길 수 없으니 움직여야 했고 우울한 엄마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경조증 시기에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나갈 수 없어서 매일 밤 술을 마셨다.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에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무서웠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만 존재하고 나머지 기능은 다 사라져 버린 것이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이 점이 더욱 극명하게 대비된 것 같다. 누가 강요해서 한 일도 아니었고 심지어 원하는 시기에 찾아온 아이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힘들다는 것이 충격적이었고 다른 엄마들은 다 잘하는 것을 나만 못하는 것 같아서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갈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더 옭아맸다.


다행히 남편도 육아 참여도가 높았고 엄마도 내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겨우 버텼다. 아이가 자라면서 수면 패턴이 일정해지고 상호작용이 가능해지면서 조금 더 수월해졌다. 그리고 나의 양극성 장애 증상도 호전되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더 편안해졌다.


육아를 하면서 또 괴로웠던 점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육아가 엄청난 일을 하는 거라고 다들 말 하지만 별로 와닿지 않았다.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공부와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처음이라 많이 낯설었다. 불면증이 오기 전에는 육아휴직 기간에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했던 나였다(지금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아이가 한 뼘씩 자라는 것을 보고 뒤집고 기고 첫 발을 떼는 것들을 나와 아이가 함께 해낸 성취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아이의 성장을 내가 전적으로 돕고 함께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임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충만하고 무료하다. 전쟁같이 휘몰아칠 때도 있지만 육아가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달콤한 무료함을 맛볼 때가 생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해 달콤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인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 속에서는 그 순간 자체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순간에 몰입하는 것을 아이에게서 배웠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있는 시간, 잠이 덜 깬 아이가 누워서 뒹굴거릴 때 함께 뒹굴거리며 몸을 비비는 시간, 무언가에 푹 빠져서 탐색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밀도 있는 경험을 했다.


또한 아이를 보살피며 자기 돌봄에 대한 감각을 많이 배웠다. 나의 아이를 살피듯 스스로를 살펴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좋은 것을 먹게 하고 충분히 잘 수 있도록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풀어낼 수 있도록 받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부분이었다. 아이를 돌보며 스스로를 돌보고 있는 요즘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 아기의 마음 상태로는 나의 아기를 키울 수가 없어서 이렇게 아픈 성장통을 겪나 보다. 나의 아기를 품어 주기 위해 나를 키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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