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이야기 #7
1989년을 회상해 보면 대략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교사들의 대량 해직 사태로 이어진 전교조(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건설이고, 두 번째는 1989년 말부터 그 이듬해까지 전노협(전국 노동조합 협의회) 건설을 기치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했던 노래판굿 "꽃다지"이다. 노래판굿 "꽃다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예술적 완성도도 뛰어나 1994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르기도 했었다.
1987년 있었던 6・10 항생은 사회 변혁운동의 진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지하에서 비합법적으로 억눌려 있던 있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들이 수면 위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1990년에도 많은 사건이 이어졌다.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사건은 뭐니뭐니 해도 5월 9일 "전노협"의 건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노태우는 국민들이 만든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김영삼, 김종필과 야합해 민자당(민주자유당)을 창당한다.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정치를 시작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핏대를 세우는 반대하는 장면은 이제 아련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그래선 안되지만, 호칭의 주관적 사용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ㅠㅠ) 1990년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10주기이기도 해 5월 전국의 가두는 시위가 끊일 날이 없었다.
학생을 대표하는 작곡가가 '윤민석'이었다면, 노동자를 대표하는 작곡가는 '노동자 노래단'을 이끌었던 '김호철'이었다. 내가 군기 빡쎄기로 유명한 군악대에 들어갔던 이유는 김호철이 군악대 출신이었다는 얘길 들어서였다. 투쟁의 현장에서 부르는 투쟁가는 여러 모로 군대의 행진곡과 유사하다. 군대에서 군가를 부르던 중 나도 모르게 투쟁가의 추임새인 "쳐이 쳐~"를 외쳤다가 당황했던 적도 있다.
난 군대에서 드럼 파트에 있었는데, 군 생활 대부분을 챙챙이(심벌즈)만 치다가 제대를 얼마 안 남기고 겨우 드럼 파트의 꽃이라는 스네어 드럼(작은북)을 칠 수 있게 되었다. 스네어 드럼은 스틱을 굴려 '드르르르' 소리를 내는 소위 롤을 연주할 수만 있으면 대부분의 행진곡을 연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롤을 연주하는 게 만만치가 않다. 입대를 하기 전 난 '노래연구회'에서 드럼을 쳤었는데, 그때는 대중가요처럼 들린다며 드럼에서 리듬을 쪼개는 기본 파트인 Hi-hat(드럼은 한 마디에 Hi-hat을 몇 번 치느냐로 비트가 나뉜다. 4번 치면 4비트, 8번 치면 8비트, 16번을 치면 16비트...)을 못 치게 할 정도였다. 군대에서 고참들한테 맞아가며 스네어 연습을 한 이유는 제대 하고 민중가요를 대표하는 드럼 연주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제대를 하고 나니 투쟁가 일색이던 민중가요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민중가요 록그룹까지 등장해 있었다. 군대에서 날림으로 배운 하찮은 실력으로는 도저히 그 수준을 감당할 수 없어 난 꿈을 접고 드럼 스틱을 꺾었다. ㅠㅠ
김호철의 노래에는 노동자의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대중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도가 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의의 피가 끓어 오름을 느낀다.
제목만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유투브에서 그 시절 들었던 대부분의 민중가요를 다시 들을 수 있다. 스마트한 유투브는 노래가 끝이 나면 비슷한 노래를 연속으로 재생해 주니, 여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문명의 이기를 한번 누려보기 바란다. 유투브에 있는 "전노협 진군가"를 링크한다. (@Back2Analog)
https://www.youtube.com/watch?v=Fu2Fs433WQ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