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이야기 #10
벌써 “민중가요 이야기”의 열 번째 글을 쓰고 있다. 고백하자면, 처음 민중가요 이야기 연재를 시작했을 땐 떠오르는 노래가 많지 않았다. 글을 연재하며 내 상념은 현재와 과거를 바쁘게 오갔고, 기억 저 편에 꼭꼭 묻어 두고 다시 꺼내지 않으려 했던 생각까지 불현듯 튀어나와 나의 잠을, 일상을, 그리고 일상의 사이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방해했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이 노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배 고픔이 가난함이
목숨을 겨냥해 달려올 때
조그만 하꼬방 이층 미싱대
바늘이 온몸 찌른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외치니
우리가 죽어야 살...
열다섯 젊은 꽃들 목숨이 살아나야 할
우리가 살아야 할, 우리가 죽어야 살...
이 세상이 부른다.
아아아 불꽃이 되어
끝내 이루리, 끝내 이루리.
우리의 세상, 우리의 세상
난 독실한 '안티 크리스챤'이다. 하지만 난 인간의 모습으로 온 예수님을 사랑한다. 내가 안티 크리스챤이 된 이유는 크리스챤들이 크리스트를 안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발끝에 있는 때만큼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가능하면 난 가난한 자의 벗으로 살았던 인간 예수의 삶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다시 찾아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주댕이로 예수님을 믿는 목사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몸소 실천했던 두 분이 떠오른다. 한 분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운동의 불씨를 지핀 전태일 열사이고, 다른 한 분은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시다가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이다. 난 만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몰래 눈물을 훔친 적은 많지만 책을 보며 울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대학 때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태일 열사는 예수님처럼 나와 먼 존재가 아니었다. 나보다 스무 살이 더 많았던 전태일 열사는 만약 나와 친척이었다면 삼촌뻘쯤 되었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했을 때의 나이는 대학생 또래인 고작 스물세 살이었다. 그리고 노래, "불꽃이 되어"는 전태일 열사의 삶을 그린 노래이다.
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만약 그 사람이 어떤 신념을 가진 사람이던 전태일 열사의 삶을 편견 없이 들여다본다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아무리 수꼴이라도 감히 일제시대에 항거했던 독립운동가를 대 놓고 디스하지 못하는 이유는 해방을 통해 현재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졌거나 또는 그 치욕의 역사에 대한 기억이 상대적으로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이 일제시대였다면, 그리고 내가 친일을 통해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면, 독립투사들을 대놓고 옹호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태일 열사가 항일 독립운동가처럼 모두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전태일 열사의 삶이 문제가 아니라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아직까지도 누군가의 삶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전 세계인의 종교가 된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을 핍박했던 로마가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과는 반대로...
오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싶다는 고1 딸에게 "전태일 평전"을 읽어 보라고 추천했다. 딸은 나에게 물었다.
딸 : 왜~~~에?
나 : 아빠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이라...
딸 : 아빠나 읽어
전태일 평전은 "태일이"라는 제목의 만화로도 출간되었고, 50주기가 되는 2020년에는 애니메이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는 분신을 통해 노동운동의 불씨를 지폈고, 많은 청년학생들이 졸업 후 노동운동에 투신해야 하는 당위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태일 열사가 유서에 썼던 것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전태일 열사의 또 다른 나이다. 전태일 열사가 마지막으로 남은 자들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그의 삶을, 그리고 그의 죽음을 영원히 잊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난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의 전태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전태일이었으면 좋겠다. 전태일에 대한 강한 집착은 오히려 대중들과 전태일 사이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마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맑스주의를 고집하며 휴머니즘의 철학인 맑시즘을 학문 속에 가두어 대중들과 유리시킨 것처럼...
역사에 안치되어 있는 유관순 누나를 비롯한 많은 항일 독립투사들을 우리가 매년 기억하는 것처럼, 이제 전태일 열사도 역사에 안치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현재를 부여잡고 있는 여느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일까? 그 때가 과연 오기는 할까? 나는 딸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편견 없이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태일 열사의 삶을, 그 꽃다운 죽음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의 전기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처럼...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