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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Sep 21. 2021

광안리 풍경

부산을 말하다 / 광안리

부산 광안리 / 그림 이종민


부산 사람들에게 광안리 풍경의 이야기는 떠꺼머리 총각 이웃집 강아지 부르듯 시큰둥하기 십상이니, 처음부터 글 읽을 사람이 부산 사람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 것을 숨기지 못하겠다.


내가 자주 오르내리는 지하철 2호선 ‘금련산역’의 출구는 들어서자마자 갯내음이 퍼진다. 지상으로 나와 해조의 냄새가 나는 쪽으로 몸을 틀면 되니 초행길에 애써 방향을 가늠하지 않아도 되며, 곧이어 얕은 경사의 짧은 길이 걸음을 재촉하는..... 그 곳이 바로 광안리 바다이다. 행정구역상으로 민락동, 광안동, 남천동 세 개의 동에 걸쳐있는 넒은 해안이니 굳이 이 길을 택하지 않고 남천동이나 민락동 쪽으로 접근해도 됨은 물론이다.


넓을 광(廣), 편안할 안(安) 이라는 지명을 오래도록 지니고 있었으니, 처음부터 넉넉하고 편안한 해안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남천동 삼익아파트’가 있는 곳에 위치하던 곶과 ‘민락동 백산’ 자락 사이의 우묵 패인 해변은 태초로부터 ‘수영강’의 퇴적 모래와 ‘대연동(못골) 골짜기’의 물이 어울려, 태평양 어느 곳으로부터 밀려왔을 법한 냉기를 품은 푸른 바닷물에 씻기고 섞이어 금빛 모래사장을 이루었을 것이 아닌가? 이 해안의 넉넉함은 또한 부산의 주산의 하나인 ‘황령산’, ‘금련산’으로 이어지는 큰 배경의 덕도 있었으니, 지명의 유래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어디 모래사장이 모두였을까? ‘민락항’과 ‘남천항’이라는 두 포구로 드나드는 고깃배가 이곳 사람들의 주된 삶의 근거였음을 짐작키 어렵지 않은 것은, 인구 350만을 넘나드는 거대도시에 여전히 1차 산업의 근거인 어촌계가 존재함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업이 진보하여, 노를 젓던 시대와 통통 거리던 디젤 엔진의 어선에서 건져 올린 고기가 아니라, 가두리 양식으로 사육된 양식어로 바뀌었다 하여 무엇이 문제가 될까? 여전히 광안리 해변의 어시장에는 싱싱한 숭어와 도다리, 농어가 펄떡펄떡 뛰는 모습이 매일 연출되는 것이다.


이곳의 장소성이 기실은 ‘해수욕장’ 이라는 여유로운 단어에 보태어 ‘포구’라는 치열한 의미의 말이 어울려져야 완성됨을 말한다. 두 항에는 여전히 ’회 센터‘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진보된 어촌의 모습을 이루면서, 광안리 해수욕장의 중요한 존립 터전을 이룬다. 그게 광안리의 진면목이다.     


나는 세월이 흘러도 이 해변에서 만큼은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곳의 변모는 마치 내가 나이가 들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속도에 맞추기라도 하듯, 실로 천천히 이루어졌으며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라서, 나는 이 바다의 변모를 부정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고 여전히 친구 같이 곁의 한 풍경으로서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버스를 타고 황톳길로 서너 구역의 정류장을 거치면 당도하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차치하고라도, 인근의 남천동에 신혼살림을 차렸던 무렵의 기억이 생생하다. 휴일의 새벽이면, 통통배의 어부들은 그물질한 고기들을 모래사장에 풀어놓고 헐값에 처분하곤 하였고, 동네 어른들이 한 바구니씩 물고기를 사곤 하던 풍경을 우리 부부는 그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오를라 치면, 던질낚시를 준비해 온 중년의 아저씨들이 건져 올린 도다리 새끼나 모래무지 따위의 물고기를 구경하며 휴일의 오전을 느리게 산책하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해수욕장이 민락동 쪽을 매립하면서 높은 건물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해운대와 용호동을 가로 지르는 광안대교(일명 다이아몬드 브릿지)가 생기면서 원경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해변의 양 쪽으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여 더욱 도시답고 세련된 풍경을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광안리 해변은 내게 예전의 느낌을 그대로 준다.

부산에는 해수욕장이 여럿 있다. 특히 해운대의 바닷가는 관광지로 특별 관리되었으며, 다대포와 송도는 방치되었다가 요즈음 들어서 재조명되는 데에 비하여, 광안리 해수욕장은 별다른 부침 없이 서서히 모습을 바꾸고 사람을 맞이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느린 모색의 광안리가 좋았다. 그리하여 굳이 마음을 먹지 않고 무심히 둘러보아도 그 때마다 바다와 모래와 포구는 그리 타락되거나 훼손되지 않았으며, 제 스스로 베풀 수 있는 만큼을 내게 나누어 주던 그 억지스럽지 않음이 좋았다고나 할까?       


지난 5월의 어느 날, 나는 이 해변에 앉아 자리를 깔고 등을 태우고 있는 이국의 젊은 여성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하릴없는 내 앞으로 회색의 살찐 비둘기 몇 마리가 먹이 찾기에 분주하였는데, 자세히 살피니 그 옆으로 서너 마리의 하얀 갈매기와 심지어 검고 흰 무늬의 까치마저 질세라 먹이 짓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왼 편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은 고급 주거 빌딩이 있었고, 막연히 크다고 느끼던 광안대교는 오히려 가느다란 하나의 수평선이 되어 치열한 근경과 더불어 무척 편안한 원경으로 그려지고 있는 게 아닌가.


예의 광안리는 삶에 지쳐 바다로 나아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 해안에서 펼쳐지는 극단의 풍경에서 꿈같은 휴식에의 열망과 곧 이어질 삶의 치열을 동시에 느끼며, 나는 더욱더 이 바다를 사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수첩에다 글의 근간이 될 몇 가지 풍경들을 묘사해 놓았다.


연인들의 맨발에 잠시 패인 모래, 집에 갇힌 애완견들이 누리는 모처럼의 자유, 해양스포츠 학습에 열중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노심초사, 이국 처녀의 노출을 몰래 주시하던 청년, 굉음을 내며 해변 처녀들의 눈길을 끌려는 부유해 뵈는 제트스키의 젊은이, 아마도 그 안에서 생선회와 샴페인을 즐기고 있을 흰색 요트, 갈매기가 비둘기 때문에 제 정체성을 잃어버리던 우스운 꼴, 던질낚시를 투척하는 노인이 미워 보이지 않던 일, 고등어에 쫒긴 멸치 떼를 상상해 본 것, 바다가 잘 보이는 작은 원룸의 임대료를 추측해 봄...... 그리고 바닷가로 나아가 모래위에 짤막하게 썼다. ‘이 곳은 꽤 민주적인 곳’.      


잠시 후, 작은 물결이 내 발 밑으로 밀려 와 그 글을 지우고 갔다. 그런 해변이 잠시의 시간 동안 내 눈앞에 있었고, 시계를 본 나는 서둘러 내 방으로 돌아와 수첩의 묘사들을 근거로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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