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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Sep 13. 2021

남항을 거닐며

부산을 말하다


그림 / 이종민

              


 남항에서만큼은 건축적 상상력을 거두어야 한다. 터만 보면 마음대로 지었다 허물곤 하는 건축가에게 창조의 대상인 도시의 관찰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도시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조망(鳥望)이란 것이 있다. 새(鳥)의 시선이 되어 내려다본 풍경..... 하지만, 내가 부산을 최초로 바라보게 된 것은 여느 내륙의 도시에서처럼 새의 눈으로 내려다 본 것이 아니라, 마도로스나 어부가 회항하는 시점(視点)이어서 유별나다. 그게 항구도시만의 매력임은 뒤에 알았고, 이후로 나는 타지의 여행객들에게 부산을 제대로 보려면 뱃전에서 바라보라고 자신 있게 권유하곤 한다.   

  

좌의 천마산(송도)과 우의 봉래산(영도)을 양측에 두고 항구로 빨려드는 남항의 초입이었다. 점점 확연하게 다가오는 도시의 모습에 소년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항구를 이루고 있는 것 또한 모두 생소하였다. 붉은 등대며 도크에 올려진 철선의 밑동이며 혹은 코끼리를 닮았던 창고들, 소년에게 도시란 담담하게 바라보기엔 그야말로 큰 물체들의 집합이었다. 굵은 밧줄이 뱃전을 치면 침을 꼴깍 삼켰고, 예고 없이 울리던 고동소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비하여 또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이던가. 마침내 용두산 공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건물이 하나둘씩 클로우즈업 되면서 소년의 가슴이 비로소 진정되었다. 일렁이는 파도를 뒤로하고 도시에 안착했다는 안도로 가벼운 멀미를 하였다. 나는 수십 년 전 '00호'라는 이름의 여객선 뱃전에서 부산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큰 도시 부산에는 남항 외에도 몇 개의 항구가 더 있다. 북항과 감천항 그리고 국제적인 위용을 갖춘 신항. 그중에서도 부산이라는 도시와 곡절을 같이해 온 항구는 남항과 북항이 아닐까 한다. 마치 어미와 아비 같았다고나 할까? 북항이 전후의 구호물자를 필두로 근년의 수출입용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던 산업과 무역의 중추였다면, 남항은 도시민의 자잘한 삶이 얽혀있던 곳이다. 최근 북항을 재개발하면서 부산 사람들은 고단하던 시절의 향수에 아련해하기도 하지만 개발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북항 대신, 더 현실적으로 부대끼던 남항이 여전히 건재함으로써 자칫 개발의 환상으로 잃어갈 법한 도시의 진면목에 대한 아쉬움을 덜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기록이 1407년(태종 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무려 600여 년 동안 뭇 갑남을녀가 바다를 근거로 살아 숨 쉬던 곳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되고, 1930년 무렵 이미 현재의 모습과 별 다름없는 항구의 형태를 갖추었다 하니, 부산 사람들의 터전 중에서 이처럼 은근하고 질긴 곳이 또 있었을까? 근년(2006년)에 남항대교가 생기면서 항구의 진화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일이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항의 이야기는 오래된 것들의 흔적과 은근한 부산 사람들의 추억을 빌어 바라봄이 옳을 듯싶다. 말하자면, 꼭 새로 만든 다리나 산 위에서 바라보는 찬란한 불빛이 모두가 아니란 말이다.     


 대체로 남항의 풍경이란 공동어시장, 영도다리와 크고 작은 수리조선소들의 파노라마를 말한다. 부산의 10대 자랑거리의 하나인 ‘자갈치 시장’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필두로 전국적으로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몇 안 되는 곳이다. 하지만, 풍경도 풍경이거니와 남항의 진면목은 치열하게 부딪히는 삶의 흔적이 늘 새겨지고 수시로 지워지는 퍼득퍼득한 생명력에 있다. 부딪히지 않고 그 면모를 어찌 이해하랴. 하여, 남항을 둘러보시려면 부디 옷에 배인 비린내를 귀찮아하거나 얼굴에 튄 생선 비늘을 떨어내려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그 정도의 각오가 아니라면 남항의 매력에 빠질 엄두를 내지 마시라. 기실 남항의 매력은 그대의 걸음걸이에 꼭꼭 숨어있다.  



 혹, 천하태평 고등어를 낚아 올리는 방파제의 사람들을 만나면, 이 자리에서 낚시를 생업으로 하던 조선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라. 일전에 나는 아득한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장소가 엮어내는 삶의 동질감에 탄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게 남항을 지탱해 온 역사이며 역동성이라면 과한 표현일까? 또한, 낡은 영도다리 밑의 점(占)집에 재미로 들러 본다거나 여전히 적산가옥인 채로인 건어물상을 기웃거려 보시라. 소주 한 잔에 오징어 다리 하나 질겅질겅 씹으면서 뱉어내는 말이 “삶이 뭐 별거던가?” 따위의 자신감이었으면 더 좋겠다. 그 정도면 남항을 제대로 느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매일 남항을 거닐고 싶은 것은 뱃전에서의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 느리게 걸으며 삶의 한순간을 의탁해 볼 장소가 그리 흔하지 않았던 탓이다. 나는 남항이 여전히 역사의 느린 맥락을 천천히 밟아갔으면 한다. 멋진 장소는 화려하지 않아도 되며 편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다만 그 자리에 존재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내가 본 남항이다. 그리하여 건축가인 나는 남항을 거닐 때마다 개발을 전제로 하는 나의 건축적 상상을 기꺼이 거두어들이곤 하는 것이다.      



#부산 #남항 #수채화 #건축가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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