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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Oct 23. 2021

가벼워지기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부산 민락동 / 그림 이종민


면도기 청소를 한다. 끈끈하고 찐득한 털의 덩어리, 잔해이고 배설이니 추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내 몸에서 나온 지방질과 화장품 탓이고, 공기 중의 먼지 또한 일조했을 테다. 더러운 기분은 거울로 옮아 동물적 상상을 한다. 표범처럼 날렵하지 못하고 돼지처럼 미련해 보인 것이다. 만화 영화 '센과 치이로'의 한 장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런 돼지의 추악함을 묘사하고 관객과 함께 치를 떨었다. 

그렇다면 적게 먹어 볼까?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리면 좀 나아질까? 아무래도 자주 씻어야겠지? 종말을 예측치 못한 때늦은 사람이 거울 앞에서 고백한다. 참 쓸데없이 욕심부리고 복잡하게 살았구나. 취했던 것은 결국 거두어야 한다는 이 단순하고도 명료한 사실. 아~ 가벼워지기.


영주동이나 초량의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참 이중적이다. 원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원시적 조망을 기대하던 첫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꽉 찬 도시에 질식해 버리고 그만 내려올 생각을 한다. 종국에 사위를 가리는 찬란한 밤 모습만이 이 도시의 메인 풍경으로 자리 잡을 것만 같다. 도시의 폭식, 그 앞에서의 절망. 매일 출근하는 길이라 하여 다를까? 거미줄 같은 선들 사이로 나는 곡예를 해야만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 가벼워지기.


건축가 승효상이 ‘빈자의 미학’을 주장한 것은 아는 바다. 貧(빈)이란 가난하다는 말이나 우리말 ‘비다(空)’와 운이 같으므로 묘한 동질성이 느껴진다. 근래에 그분이 설계한 경북 경산 ‘무학로 교회’의 작고 단순한 모습을 보면 건축가가 견지한 생각이 잘 이해된다. 

또한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더 직설적인 말씀 ‘무소유’도 있다. 거소의 방문 앞에 나무 걸상 하나만 덜렁 놓여 있던 ‘불일암’에서의 마지막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적음과 비움에의 갈망은 뒤늦은 내가 견지해야 할 바인가. 아~ 가벼워지기.


그래! 사람은 물론, 하물며 모든 사물의 이치가 그러하다. 들이긴 쉬우나 내보내긴 어려운 것. 도시를 그리면서 생각한다. 비워내야 할 것은 내 몸뿐만이 아니라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꽉 찬 도시의 명제이기도 함을 알겠다. 아~ 가벼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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