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 매축지마을, 부산
제목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이곳의 숙명이 어느 유명인의 죽음에 못지않게 내 가슴에 남는 것이니 비록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해도 이해되길 바란다. 이처럼 장소의 변모와 그로 인한 기억의 멸절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늘 아리게 한다.
이곳의 도시계획적 처리가 가타부타 말이 많았고 대놓고 결론짓지 못하였던 것을 나는 이해하였다. 삶의 진보란 명제 앞에 추억 따위는 늘 불편한 걸림돌이 아닌가. 반면 역사는 그러한 기억을 또 먹고 자란다. 이곳의 건축적 실체 또한 실로 허약하고 초라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곳에서 보낸 질곡의 시간마저 덤프트럭에 담아 멀리 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리하여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는 건축가의 적법은 대놓고 당당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서로를 탓하랴. 하물며 얼굴을 맞대고 살아온 사이라면 속내는 외치는 표현처럼 그리 야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그러한 갈등과 동조의 편린들이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절묘한 해결, 그것은 이곳에다 건축을 이루어야 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운명이라 할까? 얄궂게도 건축가의 입장은 늘 새것과 헌 것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게 된다. 그러한 동료의 입장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리고자 한 내 마음 또한 한가롭고 느긋하지 않았다. 동병상련이라 할까? 어쩔 수 없이 이중적인 마음이 교차한 것이다. 더 아린 것을 앞에다 선명하게 그리고, 좀 더 긴 시간 지속할 것들의 모습을 어둡고 불분명하게 그려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딴엔 공평한 입장이 되어 보고자 한 것일까? 그러나 이 또한 먼 훗날 한 통속의 기록으로 분류될지 모를 일이다.
역사는 길다. 그렇지만 나는 한 시점의 장면을 기록하려 한다. 내가 그러한 지점에 존재하였던 개인적 확인이다. 다시 말하여 ‘매축지 마을’이 없어지던 역사의 어느 시점에 내 두 발로 서서 “모든 사라지는 것은 슬프다.”라고 진혼곡이라도 불러주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