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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Oct 26. 2021

오래된 것들을 향한 연모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산복도로 / 그림 이종민



신도시. 도대체 이곳에 신(新) 字(자)를 붙여야 할 근거가 무엇인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며 경이이고 또 미래를 확신하는 일이다. 출산을 기다린 아기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을 생각하면 신(新)이란 말의 의미가 쉽게 다가올까? 두 팔로 안아도 보고 초롱초롱한 눈을 맞추기도 하며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떠올려야 마땅하다.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인내는 신(新)의 탄생으로 정점을 이룬다. 나는 새롭다는 제도, 업무대행에 떠밀려 아스팔트가 채 굳지 않은 신도시의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신도시에는 가장 저급한 것부터 들어오는 것 같았다. 급조, 장삿속, 치고 빠지기, 한탕주의 그리고 복제와 헛치장의 현장을 태연히 보아야 하는 것의 서글픔. 그 와중에 실눈을 뜨고 조각난 건축의 의미를 애써 찾으려는 것은 나의 순진함 때문인가? 아니면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상실한 도시계획가와 행정가, 그리고 일거리 찾기에 혈안이 된 건축가들에 대한 절망인가. 다시 말하여 우리는 도시를 향한 폭도들인가? 아무튼 저급한 집장사들이 선점한 신도시에 이곳의 탄생과 이루어갈 역사를 사유할 겨를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여, 이런 풍경을 목도하는 날은 더는 신도시를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깊이 하게 된다.


스케치북을 열고 오래된 도시를 그린다. 어차피 이 시대가 ‘프로메테우스’의 치열한 의지를 망각하고 있을 바에는 새롭다는 것이 오히려 진부하다고 여긴 이후, 뜬금없이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연모의 마음이다. 나의 건축 또한 서서히 고치고 넓히고 하는, 작은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리라. 그래! 삶의 스토리를 만들고 미래의 희망을 꿈꾸던 경험과 흔적, 잊힌 그것들이 주는 신선한 역설이 아닌가?


그림의 하단에 선명한 산복도로, 그곳에 올라 오래된 항구의 소멸과 정겨운 동산의 실종과 끊어진 물길을 내려다본다는 것은 매번 가슴 아픈 일이다. 그때마다 나는 하릴없이 북항, 을숙도, 다대포, 기장, 물금.....이름을 빼앗긴 것들의 이름을 나열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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