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깨기가 유달리 늦은 일요일 아침이다. 갇힌 방에는 지난밤 이불 속의 체취들이 아직 남았지만, 우리는 창문 열기를 미루고도 서로의 게으름을 탓하지 않았다. 그 무엇이라도 흘려보내 버리고 싶지 않은 계절이 온 걸까? 어느새 갈색 겉옷을 내의 위에 걸쳤다. 팔로 전해 오는 싸늘한 식탁 유리의 감촉 위로 할로겐 등 하나를 더 밝혔다. 며칠 전까지 싫었던 등의 엷은 온도와 주황의 빛이 좋았다. 가을이 이런 식으로 왔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창밖에 남은 초록을 의아해하면서도 아이도 아내도 동감의 눈빛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아이가 FM 수신기를 켰다. 더 차분해진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고 거실에 통통 뜬다. 스튜디오의 반향이 전파를 타고 고스란히 우리 집 벽으로 향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제목으로 벌써 가을임을 선언한다. 다음은 우리가 준비해 준 음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순서였다. 귀에 익은 오케스트레이션 속에서 애써 첼로의 음색을 찾았다.
여름내 비워두었던 물확에 찬물을 담았다. 약간의 습기가 집 안에 베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서랍 속에서 이미테이션 연꽃을 찾아 띄웠다. 물의 생기를 살폈고, 금붕어 몇 마리를 구해 넣을 궁리를 한다. 오늘따라 압력솥 밥물 끓는 소리가 나지 않아도 좋았다. 준비해 둔 헤이즐넛 향이 많이 섞인 커피를 꺼내었다. 향이 바랜 남은 커피를 유리잔에 담았다. 식탁에도 화장실에도 짙은 커피 향이 번졌다. 낙엽을 태우는 냄새의 기억은 수필을 읽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 계절 탓에 향을 그리워할 줄 알게 되었다.
넌지시 아내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이의 눈은 이미 국화 화분으로 향해 있었다. 큰 아이의 귀향에 맞추려 봉우리 맺은 것으로 사 두었던 화분. 아이가 내려와 있던 내내 뜸을 들이다가 떠나버린 이제 하나둘 망울을 터뜨린다. 아쉬움을 사진으로라도 찍어 보낼 생각을 할 것이다. 계절에 맞추어 떠나보낸 후의 시린 마음이 앞서기는 했지만, 계절은 정확하다. 계절 못지않게 삶도 순리인 걸 어쩌겠는가.
이제는 토스트를 구워야 할 차례, 눈금의 온도설정을 약간 올리고 싶어졌다. 빵의 엷은 갈색이 아무래도 더 바삭거릴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서걱서걱 양껏 물오른 제철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어도 이물감이 없었다. 가을은 여름내 까칠했던 입속으로도 따라온다. 온몸에 사과의 물길이 번진다. 계절의 경이는 가까이에도 있다. 비로소 생생하게 삼백육십일 전의 계절을 기억해 내는 나의 오감이 고마웠다.
할로겐 등의 점점 엷어져 가는 불 빛 아래로 어젯밤 잠 못 들게 하던 책 하나가 그대로 놓여있다. 그래! 오늘 문득 온 것이 아니었어. 밤이 길었던. 그래서 무심히 책을 펴든 지난밤부터 느껴야 했었어. 가을은 얄밉게 이미 저 책갈피 속에 먼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