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는 야생성과 창의성을
재난 같았던 건축을 간신히 마치고 입주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성탄 전 날 오후, 교회행사를 마치고 남편이 마주치는 교회 사람들에게 저녁에 할 일이 없으면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 나는 나중에 남편이 마주치는 교회 사람들마다 초대를 했다는 것을, 그들은 모두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이 되자 작은 집은 금세 사람들도 가득 찼다. 말 그대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앉을 곳이 없어서 음료수를 하나씩 든 채 2층계단부터 5층의 작은 다락까지 앉아있었다. 다행히 미니멀리즘이 잘 실현되었던 시기라,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있었다. 정확한 인원수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까지 24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정신없이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채우느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과 다르게 나는 소수의 사람들과 집중해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나 모르게 이런 일을 벌인 남편에게 핀잔을 주기는 했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때 다섯 살이던 첫째 아이는 7년이 지금지금까지도 정신없었던 크리스마스 파티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모두 음료수 하나 싹을 들고 계단까지 모든 곳에 앉아 있었다고. 넓은 집이 아닌 작은 집이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놀러 왔던 것이 꽤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자연환경이 뛰어난 강릉이나 제주 같은 곳으로 이주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이들에게 야생성과 창의적인 면을 키워주기에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 등으로 서울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건축은 거대한 도시에서 아이들의 야생성과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했던 몸부림이기도 했다. 아이답게 뛰고 소리치며 놀 수 있는 것 외에도, 독특한 공간은 아이들의 삶에 창의적인 면을 길러주었다. 공간이 곧 그 사람의 삶이라는데, 작은 인간인 아이들도 예외일 수 없다. 아이가 학교나 미술학원에서 집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 다양한 창과 계단이 있는 집이 그림에 있었다. 상상화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릴 때도 아이의 집에는 다양한 공간과 모양이 있다. 아이의 그림에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요리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을 때 부엌이 배경으로 그려졌는데, 회색 싱크대와 검은색 바닥이 그림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그림이었는데 요리를 표현한 컬러 이외에는 무채색 색깔이 많았다. 집에 놀러 오셨던 이모가 집에 환한 색깔이 많아야 아이가 밝아지는데 집이 다 무채색이라 걱정이라고 하셨던 일이 떠올랐다. 다행히 아이는 시크하지만 밝게 자랐다. 천장마저 노출 콘크리트에 코팅을 입혔기 때문에 살짝 걱정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 집이라서 있을 수 있었던 추억들, 작지만 많은 계단들과 재미있는 공간들이 아이들의 삶에 반영되어서 어른이 되어서도 재미있는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