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에어비앤비에서의 일주일, 바르셀로나 에어비앤비에서의 한 달, 방콕의 에어비앤비에서의 한 달반. 시간이 날 때마다 좋아하는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가능한 일정이 길게 한 동네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해서 지내는 것이 나의 여행 방법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나 쇼핑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가는 슈퍼에 가서 장을 보고 요리해 먹고, 산책을 하며 각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여행하고 싶었다.
포틀랜드나 바르셀로나, 방콕의 에어비앤비들은 깨끗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다 보니 집 자체의 인테리어나 디자인이 훌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각 도시의 집들은 역시 <집>과 <동네>, <쾌적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했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했다.
포틀랜드는 작은 가게들이 각각 개성 있게 운영되고 있었고, 차로 한두 시간 정도이면 Cannon Beach나 Lost Lake 같은 곳을 갈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에어비앤비 옆 블록에 귀여운 셀프 빨래방이 있었는데, 세탁공간 옆에 간단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직원이 세탁 방법도 열심히 알려주고, 빨래방 한쪽에 쪼르륵 걸려있는 세탁한 양말들이 귀엽게 걸려 있었다. 빨래방에서 세탁을 하고, 미국 답지 않게 걸어서(?) 동네 슈퍼에 가서 장을 봤다. 슈퍼에는 포틀랜드에서 자라고 만들어진 농산품과 공산품들이 많았다. 평화로운 동네에서 살며 귀여운 빨래방에서 세탁을 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커피와 음식을 즐기다가 주말이면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쉽게 할 수 있는 곳이라니! 게다가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라는 점이 너무 좋았다. 포틀랜드 로컬들은 모두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기는 느낌이었는데, 짧은 거리에 압도적으로 멋진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스몰 비즈니스들이 버티지 못해 프랜차이즈들이 많이 들어왔고, 펜타닐의 영향으로 포틀랜드 역시 예전과 다른 느낌이라고 얘기를 들어서 안타까웠다. 남편과 나는 포틀랜드 여행 이후 항상 살고 싶은 동네의 이상향은 포틀랜드였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있는 <동네> 다운 동네가 있는 곳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우리나라로 치면 <구> 개념을 <동>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로컬들이 사는 곳 한가운데 에어비앤비를 예약해 버렸다. 하지만 실수 덕분에, 바르셀로나에서 바르셀로나다운 라이프 스타일을 잘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수산물 가게에서는 아구를 사서 중국 마트에서 사 온 숙주와 같이 찜을 해 먹기도 하고, 카탈루냐어로 끝없이 말을 걸며 아마 아이가 귀엽다고 말하는 귀여운 수다쟁이 할머니들과 장을 보기도 했다. 점심은 <메누 델 디아>를 꼭 먹어야 했기 때문에 점심은 다양한 식당에서 먹었지만, 저녁은 장을 본 재료로 숙소에서 밥을 해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 가족의 정해진 다음 코스는 숙소 근처의 구엘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것이었다. 마지막 입장 세션이 종료되면 구엘 공원은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이 시간에는 산책을 나온 동네 사람들이 많았는데, 해가 지기 시작한 구엘 공원에서의 산책은 너무 아름다워서 내 인생 중 가장 호사스러운 산책이었던 것 같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저녁을 매우 늦게 먹는 것이 신기했는데, 항상 노천 테라스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놓고 끝없이 수다 떨던 사람들을 보며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유독 밝고 상냥했던 것은 햇빛의 영향뿐만 아니라 수다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사람들의 일상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는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오버 투어리즘과 소매치기들이 극성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탔던 택시 아저씨의 자부심처럼 사람이 좋고, 도시가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고 치안이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면 엄청난 미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얻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방콕은 Ari라는 지역에 일 박에 2만 원이 조금 넘었던 레지던스를 예약했다. Ari는 번잡한 방콕 도심과 달리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곳이다. 하지만 가격과 달리 레지던스에는 루프탑에 작은 수영장이 있었다. (사실 방콕의 거의 모든 레지던스들은 수영장이 있다) 하루에 한 번씩 올라가서 하는 수영은 수영을 너무 좋아하는 나에게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라는 질문을 주었다. 집 근처 체육센터에서 수영 수업을 듣고 있지만, 작더라도 우리 집의 수영장에서 무념무상으로 해파리처럼 떠서 하루의 긴장과 짐을 털어내는 것은 또 다른 삶의 결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하는 여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하며 했던 여행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내게 맞는 동네>와 <집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