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쓰이면서' 창작의 가치를 알아갔어요
️ <어라운드 드로잉>의 시작
처음 시작은 아주 사소한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느 여름 날, 동료 작가이자 하추리 숙소의 이웃인 샤론에게서 소중한 지인 분들이 여섯 분이나 놀러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를 이 곳, 인제로 올 수 있도록 인도 해준 그녀이기에 샤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하추리에서의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준 샤론이 '기왕 함께 하는 거, 의미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도록 엠케이가 그림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리드 해보면 어때요?' 라고 제안해왔고, 저는 얼떨결에 그림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미술로 강의를 할 때마다 마음 속 한 구석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만족 시켜야 한다’ 한다는 부담과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그림 워크숍을 진행 하면서는 조금 달랐습니다. 강원도 인제까지 샤론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를 만족 시키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 연결되기를, 우리 모두가 삶을 돌아보고 그 과정을 따뜻하게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워크숍은 저절로 흘러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감정을 이미지로 탄생 시켰습니다. 바다에 파도가 만들어지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저는 그저 듣고 감탄하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미 그 곳에 있는 모두가 창작자였고, 거대한 이야기를 가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삶의 장면들이 서로의 손을 거쳐 새로이 탄생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아. 나는 이러고 싶어서 그림을 그려왔나보다!'
각자 고유의 스토리를 밖으로 꺼내 놓는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창작에서 오는 치유의 힘을 다 같이 느끼고 싶어서.
그 날의 경험 이후로, 저는 작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란, 재능을 빛내고 주목 받는 존재.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그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작가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한 때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 갈망한 적도 있었으나,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제가 할 수 있는 창작은- 나와 맞닿아 있는 사람들을 창작자로 만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창작을 하고 싶습니다. 나를 독보적으로 빛나게 만드는 창작이 아니라, 나와 닿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명 하는 일이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 안에 잠자고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즐겁게 돕고 싶습니다. 없던 것이 탄생 되는 순간. 혹은 아픔의 기억이 치유되는 순간. 다시 살고 싶다고, 나도 표현하고 싶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순간. 그런 순간들을 그리고 쓰면서 함께 느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짜 ‘창작의 힘’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