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위해 반드시 마주보아야 하는 것들
️ 진짜 독립- 창작자로서의 자립
9월부터 매일 아침마다 한 장의 그림, 책을 읽고 통찰을 쓰는 것을 1번으로 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슬럼프를 겪고 난 뒤 창작자로서의 중심 잡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매주 300km를 왔다 갔다 하는 이유는 창작자로 살아가기 위한 것임을 잊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마음을 받아쓰고 들여다보고 나니, 창작자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12월부터 모든 외주 및 강의가 종결됩니다. 그동안 제가 하고 있었던 일은 예술 지원 사업으로 강의를 하거나 비영리 단체에서 학생들과 창작 활동을 하는 워크숍을 의뢰받거나 청년 작가살이 지원 사업으로 창작 활동료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즉, 어딘가로부터 지원받아야 지속 가능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어딘가에 속해서, 노동력을 제공해서 그 대가를 받는 것에 익숙했던 저는 [지원 사업이 없으면, 누군가 나를 써주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왠지 안 될 것만 같은 의존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제군 회의 때 청년 작가로서 의견을 내야 하는 자리에 있을 때마다 입을 쉽게 떼기가 어려웠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지금 창작자로서 제대로 서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는데, 청년 작가촌의 비전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부터 일단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원금이 나오지 않는 기간 동안, 혹은 지원금에 기대지 않고서라도 예술가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독립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어 내는 시도를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확신은 그러면서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점이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환경이 변해도 원점 그대로 일 것이라는 것을, 6개월이라는 시간과 맞바꿔 배웠습니다. 어찌 보면 저는 그동안 참으로 안전하게 창작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미술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면서도 작가라는 이름에 짜치지 않을 정도의 일들만 골라 하면서, 일하는 기간이 예측 가능하고 확실하게 돈이 나오는 곳에서 멘탈이 안전할 정도로만 그리고 쓰면서 사는 것. 그러면 확실히 불안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런 것을 진짜 예술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할 수 없는 저 였기에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두려워서 미뤄온 생의 숙제가 20년 동안 꿈만 꾸게 만들었고, 앵무새처럼 작가로 살고 싶다고 말만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제 결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안전한 몇 개월을 보장 받기 위해 이력서와 지원서들을 뿌리는 게 아니라 보장 받을 수 없더라도 진심을 다해 그림을 그려서 그걸 뿌려보자고. 창작자로 살기로 한 이상, 나의 창작물에 책임을 지고 세상 밖에 꺼내어 보자고. 세상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면서도 나를 다 보여주지는 않는, 상처 받기 싫어서 나오는 알량한 방어기제 따위는 이제 저 멀리 집어 던져버리자고. 얼마든지 실패해도 되니까, 상처 투성이가 되어도 좋으니까 세상이 알아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내 진심을 펼쳐보이자고.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내 몸으로 피부로 느끼고 돌아오겠습니다. 설령 찢겨져 상처가 난다고 해도, 거기엔 새 살이 돋아나 결국은 더욱 나다운 내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