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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의 감촉 Oct 22. 2023

잘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수많은 엄마표 육아에 킥을 날리고 싶다.

뱃속에 아이를 품었다는 것을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10년. 아직도 내게 "엄마"라는 이름은 낯설다. 요즘도 아이들이 "엄마~ 엄마~"하고 나를 찾을 때 문득문득 가슴이 철렁 하곤 한다. 내가 엄마였지. 이런 경험은 비난 나뿐이 아니리라. 우리 모두는 대략 20대 어딘가에서 시간인식이 멈추어버린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므로, '엄마'뿐 아니라 '아빠'라는 호칭에도 눈을 끔뻑이며 놀래는 분들이 있으리라.


대가족사회였고, 가족 내에서 큰언니 오빠로서 혹은 삼촌 이모의 입장에서 아기가 크고 자라는 모습을 쉽게 보고 도우며 아이들을 이해하며 자라났다. 혹은 골목 안에서 이웃들과 함께 자라며 이웃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핵가족과 아파트라는 단절된 공간은 아기, 아이라는 존재를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분리시켜놓았고, 우리 세대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들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체험하지 못하며 자랐다. 아무런 아이템, 경험치 없이 게임을 시작한 것과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할까.


수많은 육아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잘 키우라는 사회의 압박은 거세다.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수많은 잔소리들에 미리 대비를 해야했다. 잘 키워. 잘 키우라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수십년 전만해도 이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가 섬그들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이게 우리의 현실 아니었나.


학교운동장에서 쉬는 시간에 공놀이를 하면 안된단다. 공원 공터에서도 누군가가 다칠 수 있어서 안된단다.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놀면 혼난다. 그럼 아이들은 어디서 노나?


우리 어릴 때는 공터에서 운동장에서 공놀이도 하고 야구를 하다가 남의 집 창문을 깨고 도망가기도 했다. 그래도 동네에서 야구하는 녀석들 어른들 눈에 다 점찍어져 있어서 도망가도 소용없다. 이제는 어디서 공놀이하다 모르는 사람 차에 기스라도 낼까봐. 학원에 가야한다. 축구클럽에 들어가야 한다. 야구팀에 들어가서 레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잘 키우란다. 못키우면 다 부모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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