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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의 감촉 Oct 22. 2023

성규에게

나 아깝게 생각해준 거 그걸로 충분해 아니 넘치게 고마워.

“성규야, 안녕? 네게 처음 편지를 써본다. 처음이 아닐지 몰라. 22년, 우리 오랜 시간을 건너와 기억이 정확하지 않구나. 아름다운 반려인을 만나 사랑하게 된 네가, 친구로서 참 기쁘고 다행스럽다. 결혼 축하해. 이 말을 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어. 잘했다. 이 녀석.


난 그 날이 어제 같다. 대학교 3학년 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진행 도와주러갔던 날. 늦은 밤 기숙사 건물 뒤 보도 블럭에 너랑 나랑 걸터앉았지. 맥주 몇 캔 홀짝거리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가만히 포옹을 해봤어. 우리 둘은 숨넘어가게 웃고. 남자사람친구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시작된 우리의 떼지지 않는 정.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도 네가 가까이 살고 또 사업 구상 중인 백수라는 핑계로 남편보다 네게 전화를 거는 날이 더 많았어. 그렇게 나단이와 한나에게 삼촌이 되어준 너. 


나도 모르게 부탁만 하는 처지의 내가 뻔뻔하게도 너에게 소리를 지른 때도 있었다. 그 날 너는, 5시가 넘으면 어린이집 불이 꺼진다며, 내가 늦게 퇴근하면 어두운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나단이가 가엾다고 나를 몰아붙였어. 난 이제 단축근무 더 쓰면 잘린다며 악을 썼고. 아무 말 없이 다음날부터 네가 나단이를 일찍 데리러 가더라. 남편 샌프란시스코 출장 가있던 날. 부모님도 멀리 계시는 데 아이 둘은 고열과 구토와 설사. 너랑 나랑 둘을 들쳐 업고 응급실 가던 날은 평생 못잊지. 그때 내 등엔 나단이가 토를 했고 너의 티셔츠에는 한나 기저귀에서 샌 설사가...      


작년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너는 가만히 나를 보고 또 아이들을 보고... 그렇게 번갈아 쳐다보다가 말없이 울더라. 남편도, 회사도, 부모님도, 다른 친구들도 모두들 내가 엄마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너만큼은, 내 친구 성규만은 내가 아깝다고,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너의 도움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야. 한나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회사 다닌 거 말야. 요즘도 나단이 하교시간, 한나 하교시간이며 학원 오가는 시간을 난 깜빡깜빡하는데... 이제 나 결혼하고 이사 가면 어쩔꺼냐며 구박하는 네가 벌써부터 그립다. 


결혼하고 이사간다고 미안해 하는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 나 아깝게 생각해준 거 그걸로 충분해 아니 넘치게 고마워. 내가 걱정이야. 육아 품앗이를 어떻게 갚을까 고민이 무척 깊다고. 나와 함께 육아를 겪어본 넌 아내를 위해서도 안낳겠다고 했다만, 생각이 바뀌면 말해. 나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이모가 된다면 힘을 다해 도와줄게. 사랑한다. 고맙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친구 성규 다시 한번 결혼 축하해."     


이 편지를 우연히 읽은 남편은 가슴이 철컹했다고 한다. 아내에게 내가 몰랐던 남자가 있었던가. 쓰게 웃으며 나는 “지어낸 이야기야.” 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수백 번 속삭인다. “진짜였다면... 진짜였다면.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친구가 내게 있었으면. 내게 성규가 있었다면...”     


2023년 3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는 정책을 들고 나온 정치인. 100만 원대의 월급으로 동남아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한다. 나는 비참한 환경 속에서 돌아가신 고 속헹 님을 못잊는다.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한파를 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바로 몇 년 전 일이고,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심리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했을 뿐 아니라, 착취에 착취를 더하겠다는 국회의원의 발상이 소름끼쳤다. 싱가포르의 정책을 가져왔다 했지만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저출생 해결에 도움이 안됐을 뿐 아니라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의견을 양육자들에게 물었을 때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이다. 양육자 대부분이 반대하는 이유로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될 것 같아서” 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양육자들이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손쉬운 해결책으로 ‘양육’이라는 부담을 개인과 가정에게로만 떠넘기려는 정부의 얕은 셈에 이 땅의 양육자들은 이골이 난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현실도, 양육 현실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 ‘지게 지고 엉덩춤 춘’ 정책이다.   


OECD 최하위의 남성 육아휴직 이용률과 OECD 평균이상의 남성 여성의 임금차, 노키즈존, 맘충 등의 혐오. ‘저출생 문제해결’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갔으며, 해가 갈수록 사회문제의 골만 깊어지는 나라. 양육자와 교사들이 수십 년간 교사대아동수가 너무 많다고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얼마 전 서울시는 보라는 듯 ‘저출생으로 인해 더 이상 보육교사를 채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양육과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치권과 정부관계자들. 


양육자와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내 친구 성규처럼 함께 짐을 지는 공동체는 언제까지 나의 판타지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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