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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의 감촉 Dec 06. 2021

잘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3

엄마와 아이가 나타나면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나요?

몇년 전 기사 하나를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훈훈한 사연들에 네티즌들이 감동하고 있다는 뻔한 스토리를 내가 왜 클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에 엄마가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클릭을 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아, 찾아보지 않는다. 기사인즉슨, 게시판에 올라온 한 글이 버스에 탑승하는 모자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인데, 버스에 탈 때부터 타고 나서 아이를 가르치고 대하는 엄마의 품성이 아주 훌륭했더라는, 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찬양했다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인격을 쉬이 찬양하는 것은 엄마들로 하여금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 엄마들과 모임을 가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에 다녀오면 뒷정리를 잘하고 가야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다. 심지어 나의 친정부모님은 당신들께서 사주시는 식사인데 식당에서 식후 그릇정리까지 하신 적이 있다. 맘충이 되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내가 보기에 엄마 인격 찬양은 맘충, 노키즈존이라는 혐오의 다른 얼굴이다.


엄마도 아이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고 누구나 처할 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은 지워진 채 그저 엄마의 인격만 거론하는 것은 엄마와 아이들에게 사회적 폭력이 될 수 있다.


버스 모자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버스를 타는 날 만약 이런 날이었다면?

엄마가 지난밤 야근과 밀린 집안일로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정신이 없는 상태다.

엄마가 남편 혹은 다른 가족 혹은 가까운 이와 관계가 틀어져서 그로 인해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이다.

엄마가 선배 혹은 고객의 갑질로 인해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다.


아이의 경우도 얘기할 수 있다.

비염이나 아토피 등의 알러지 질환으로 몸이 많이 좋지 않아 쉽게 칭얼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유아사춘기의 한가운데 짜증으로 가득차 이미 엄마한테 한댓박 들이 부은 상태.

아이가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에 새로 적응 중이라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그냥 성인을 공공장소에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공장소에 엄마와 아이가 나타났을 때라면 평가부터 하려고 하지 않았나?

아이가 모범생처럼 반듯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좀 힘든 표정이더라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더라도

이해해줄 수 있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없을까?


그렇기에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건 그냥 격언이 아니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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