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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의 감촉 Oct 22. 2023

노키즈존이 뭐야?

“노키즈존을 들으면 아이들의 귀가 썩어요!!!”


1. 양육자로서의 노키즈존 경험     

  1-1. 자녀에게 노키즈존을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     

추운 겨울에 제주도에 아이 둘과 저 이렇게 셋이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해가 지는 분홍빛 하늘을 보자며 셋이 손을 잡고 바닷가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바람도 불고 캄캄해지고 너무 추웠기에 들어갈 곳을 찾다가 멀리서 카페를 발견하고 신나게 뛰어갔습니다. 문 앞에 선 순간, 한 단어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노키즈존”

엄마 노키즈존이 뭐야?”     

이 상황을 자녀에게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양육자들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설명을 해주려고 해도 아이들은 이미 몸으로 알아버렸습니다. 뾰루퉁한 목소리로 “난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못들어가는데?”부터 시작해서, “어른들도 시끄러울 때 있잖아.” 등등 자녀들의 물음에 아무리 부드러운 말로 대답을 한다고 하여도 『막힌 벽』과 같은 노키즈존의 존재를 옹호하는 답변은 어렵습니다. 단지 <어린이>라는 성장기의 일정 시기라는 이유만으로 확정적 방해자로 규정받고, 기회조차 박탈당해 특정 공간에서 거부를 당한다는 것. 노키즈존 앞에서 양육자들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아이가 어리다고 하더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노키즈존이 계속 성행하는 한, 성장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노키즈존의 존재를 알고 물을 것입니다. 어떤 답변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느낄 충격과 거절감을 상쇄할 수 없습니다.           





  1-2.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된 양육자들     


경향신문은 2022년 8월31~9월1일, 서울하늘숲초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노키즈존에 대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실시, 조사결과 총 86명 중 62.8%(54명)는 노키즈존이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고 응답했습니다. 83.7%(72명)는 ‘식당이나 카페 주인이 돼도 노키즈존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했고 47.7%(41명)는 ‘성인이 된 뒤에도 노키즈존 시설에 방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반면, 2022년 2월 한국리서치의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는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만나는 양육자들이 모두 노키즈존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찬성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김지혜 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울어진 공정성”이라고요.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 (중략) 우리의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감수한다.           


+ 기울어진 공정성 1 - 공동체에서 분리된 아동과 양육자     


한국이 대가족제였고, 8~90년대 골목문화이던 시절에는 주변에서 어린이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핵가족화로의 변화와 아파트라는 공간상의 변화로 아동은 사회 일반의 구성원이 아닌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즉 대가족일 때는 동생으로서 혹은 조카로서 아동을 경험했습니다. 골목문화였을 때 역시 오고가는 거리에서 아동들을 마주치고 그들의 놀이문화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요즘의 아동들은 어린이집, 놀이터, 유치원, 학교, 학원 등의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일반 성인들과의 접점은 협소합니다. 도시화된 사회 속에서 소위 공터라는 것도 없어진 현재, 아이들은 사교육에 의한 놀이만이 가능합니다. 삶을 공유하며 마주치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단절되기 시작했고, 안전 혹은 아이들은 시끄럽다는 등 이유로 아동에게 허락된 공간은 점점 제한되고 있습니다. 놀이터 역시 거주주민에게만 허락된 놀이터 등 제한된 공간이거나 그나마도 유아를 위한 놀이기구만 있거나 구기종목 금지, 오후 6시 이후 놀이 금지 등의 경고문이 붙어있어 요즘 아이들은 겨우 편의점이나 무인가게 등에서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과거 대가족, 골목문화에서는 아이는 사회공동체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문화이고, 공동의 책임이라는 유대감이 존재했습니다. 아울러 대부분의 세대가 동기(同氣), 혹은 이모, 삼촌으로서 아동이라는 성장기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아동이란 존재는 아동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거나 출산을 경험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성인 특히 청년의 일상에서는 분리된 존재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양육자들도 출산, 육아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가 아동을 처음 접해본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렇게 아동과 양육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체와 서서히 분리되었고, 분리가 일상화 되자, 빠르게 대상화되었습니다. 즉, 현재 대한민국 현실에서 양육자와 양육자 외의 사회구성원은 과거와 같은 상호호혜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권력과 힘의 방향은 언제나 사회의 약자들을 향해 가기 마련이고, 특히 공간이라는 힘 안에서 아동과 양육자들은 약자, 대상화 - 특히 감시와 감독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회로부터 환대받지 못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은 점점 협소해지고, 아동과 양육자들은 감시와 감독의 대상이 되며 점점 약자화 되었습니다.

감독의 대상이 된 양육자들은 눈치를 보고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해서 한다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머물렀던 자리를 필요 이상으로 치우고 나오기도 하고, 되도록 빨리 먹고 일어나거나 자녀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미디어기기를 준비합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싫어 아예 외식을 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기울어진 공정성 2 - “맘충”이라는 혐오표현과 “노키즈존”의 양육자에 대한 편견을 확대시키는 악순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어디나 있기 마련입니다. 블랙컨슈머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인구통계학적으로 30대가 블랙컨슈머로서 ‘상습성’이 높다고 나타납니다. 일부의 30대가 그런 행태를 보였다고 해서 30대라면 상습적 블랙컨슈머일 것이라고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반면, 양육자의 경우는 민폐를 끼치는 “맘충”으로 쉽게 대상화, 일반화합니다. 일부 불편을 초래한 양육자의 행동을 일반화하여 편견을 만들었습니다이는 맘충이라는 혐오표현을 생산했으며혐오표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또다시 편견을 강화하고 노키즈존을 양산했습니다차별과 혐오를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의 한 축에 노키즈존이 있습니다.     

노키즈존에 반대하는 논리에 “No Bad Parents Zone”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Kids Care Zone”도 그 예입니다. 마치 배려한 언어인 듯 하나 양육자 입장에서는 양육자에 대한 편견을 담은 차별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 기울어진 공정성 3 – 댓글로 본 우리 사회의 양육자혐오 실태     


2023년 6월 26일자 KBS의 회전문에 낀 5살 아이 다리 골절...안전관리 사각지대 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습니다. 기사의 요지는 회전문의 안전관리에 구멍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회전문 제작사가 스스로 안전점검을 하기에 회전문 안전 점검 자체가 부실하며,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나중에 기사를 찾아서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회전문은 몸이 닿으면 멈춰야합니다. 아이의 발이 회전문에 끼인 사고를 목격한 성인이 와서 회전문을 멈추려고 손으로 당겨도 멈춰지지 않고 회전문은 계속 돌아갔습니다. 그러는 중 아이의 골절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상황이 영상에 나오고, 기자가 리포팅을 했음에도 비상식적으로 양육자를 비판하며 ‘회전문을 노키즈존으로 하라. 회전문에 탈때는 아이를 안고 타라. 백프로 부모책임, 엄마책임이다. 핸드폰 보며 놀고 있었느냐, 백화점 빨리 들어가려고 애는 안봤느냐, 니가 낳은 새끼 니책임이다. 아이들 애착인형 좀 못들고 다니게 해라.’         




저희가 놀란 점은 댓글의 내용도 물론이지만, 그 양과 공감수입니다. 200여개에 달하는 댓글 내용을 모두 소개하려면 이 토론문을 다 채워도 부족할 것입니다. 저희 단체와 활동가들이 인터뷰이 보호를 위해서라도 댓글창을 닫아달라는 요청을 KBS 측에 보냈고, 유투브 채널과 네이버 기사에서 댓글창을 닫도록 조처를 하였습니다.     

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회전문 씬이 생각났는데요. 백상예술상에서 연출상을 수상한 유인식 감독은 “회전문 앞에 서 있는 세상의 모든 (영우)우영우들에게 뿌듯하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며 우영우들을 응원하는 메시지에 많은 이들이 크게 공감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회전문 장면>     



회전문 앞의 어린이와 양육자. 우리에게 송곳같은 비난의 언어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내리는 것은 이 사회에 “양육자 혐오”가 자리를 잡았다는 하나의 예입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기자회견을 하면 애 안보고 어딜 나왔냐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기자회견장에 나오면 아동학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혐오로 쌓은 장벽 안에 갇힌 느낌입니다. 지난 6월 27일에 방영된 YTN2채널 이슈더있슈[클립 29회]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가 출연, “사실상 노키즈존은 노 맘충존입니다.”이라고 발언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노 맘충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가 조금 애를 소홀하게 관리를 했더니 내가 갑자기 맘충이 돼있는 거에요. 나를 벌레에 비유해. 맘충이야.” 등 여러 번 반복해서 발언했습니다. 구정모 교수는 국가인권위 인권경영 포럼위원으로 해당 프로그램에도 인권위 위원으로 소개합니다. 국가인권위 위원이라는 사람도 혐오· 차별어를 방송에서 남발해도 될만큼 이 사회는 양육자 혐오에 무감각합니다.                               



                

2. 노OO존을 넘어, 차별의 벽이 아닌 이해의 공간으로     


  2-1. 우리에겐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양육자 혐오는 분명 존재합니다. 이 사회는 아닌 척 합니다. 양육자 혐오에 대해 사회적 환기가 필요합니다. 여성혐오, 아동에 대한 몰이해, 소수자를 배려할 만큼 환대의 여유가 없는 젊은층, 결혼과 육아가 특권이라 여기는 인식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얽히고설켰고, 그 비난의 화살이 양육자에게 향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노키즈존 관련 인터뷰를 저와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이렇게 세 명이 경향신문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인터뷰 기사 아래에는 수많은 혐오 댓글이 달렸습니다. 경찰에 고발했지만, 혐오댓글을 제 목소리로 읽어야만 고발이 된다는 2차 가해를 당했고, 모든 고발은 불송치로 종결되었습니다.      

저희의 고발은 첫 번째, 국가기관인 경찰의 혐오· 차별어에 대한 인식수준을 알게 했습니다. “개돼지”라는 문맥과 관련 없는 단어를 사용했고 “싸질러놓은 애들의 책임을 지지 않는 자들을 금지한다.”라는 내용이라도 작성자가 위아래 적어놓은 다른 댓글과 내용이 통일된다는 이유로 ‘혐의 없다’고 하였고, “아이들보다 니들이 문제다 맘추웅들아”라는 댓글에서는 맘충이라는 댓글이 혐오가 아닐 수 있으며, 일반인이 맘충이라는 단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가변적이라며 ‘혐의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욕적일 수 있지만 모욕죄가 아니며 차별적이지만 차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또한 “입으로 똥을 싸네.”라는 표현에도 경기고양경찰서의 결정문은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한 표현이지만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표현이 아니라고 일축합니다. 불쾌하고 무례한 건 인정하지만 이미 우리는 엄마, 여성양육자로서 인격적 가치가 무너졌는데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두 번째, 결론적으로 이런 혐오댓글은 해도 괜찮다는 학습만 하게 해주었습니다.      

두 가지 결론은 무엇 때문입니까? 차별금지법이 없어서입니다. 비단 아동 청소년 양육자뿐 아니라 수많은 소수자들을 향한 비난에는 혐오는 자유다.” 라는 주장이 빈번합니다. 마음 속으로만 감정을 가지면 자유이겠지만 소수자를 향하여 이렇게 혐오는 내 마음이다.” 표현으로 내뱉는 순간, 그를 파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범죄입니다. 이 사회는 혐오표현에 아무런 재재가 없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차일피일 미루며 이제 혐오표현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넘어서 일종의 권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두고만 보실 겁니까? 우리에게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유언비어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습니다. 공론의 장으로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나와서 본격적으로 사회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시도해주십시오.          

 


 2-2. 아동은 시민이며 권리주체자


앞서 말씀드린 제주도에서 노키즈존 카페, 차별의 벽을 경험한 이후 저의 아들, 딸은 국회 앞에서 이렇게 시위를 했습니다. 노키즈존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적어보자는 저의 말에 저의 아들은 이렇게 썼습니다. 노키즈존을 들으면 아이들의 귀가 썩어요!!!” 저는 이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존재가 부정 당하는 단어인데 귀가 썩는다는 건 오히려 약한 표현이 아닐까요?     

오늘 토론회에 참석한 이지예, 이정후 어린이 활동가를 비롯하여 저희 단체에는 수많은 어린이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노키즈존을 반대하는 ‘어린이차별철폐운동’뿐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저지를 위한 ‘탈석탄행동’, 정부탄소배출감축목표 위헌 헌법소원 ‘아기기후소송’ 등을 비롯한 환경기후정의 활동, EBS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미디어리터러시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비단 정치하는엄마들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에서 어린이 활동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 시도구청 단위에서 “아동친화도시”를 위해 초등학교, 유치원에서 아동권리교육을 받고 아동권리모니터링단과 아동 옴부즈퍼슨을 운영하는 사례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단체를 비롯, 대부분의 어린이활동가들에 대한 뉴스나 리포트에 대한 여론은 부모가 시켜서 나왔구나.”입니다. 아동 스스로는 권리 주체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아동이 권리주체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성인입니다. 아동친화도시가 허울 뿐인 여성친화도시 간판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동, 담당공무원이나 기관만이 아는 아동친화도시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아동의 권익과 권리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현재 정부와 국회에서 <아동기본법>의 입법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아동기본법에 아동, 청소년 당사자가 얼마나 참여했는지 궁금합니다. 얼마나 많은 아동, 청소년 당사자들이 아동기본법에 참여했는지 또한 더 많은 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체적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아동기본법에 바라는 점은 아동이 권리 주체자임을 인식시킬 수 있는 정부조직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정부부처에서 아동, 청소년 관련 부처의 이름은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혹은 <아동권리보장원> 입니다. 관련 부처 이름부터 다분히 시혜적입니다. 핀란드의 국가아동전략부가 있습니다. 중립적이면서도 아동 청소년에게 시혜적이지 않은 조직명이 가능합니다.     

유럽평의회의 아동권리를 위한 전략(2016-2021)에 따르면 

“2. 아동의 참여(Participation of children)에서 

- 아동에게는 피청취권과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 

- 아동 관련 법률, 정책 및 실행계획 개발·시행·평가에 있어 아동의 의견을 존중해야 함. 

- 회원국들은 아동 권리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아동과 협의해야 함” 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정부기구를 마련되는 아동기본법이 되길 바랍니다.



  2-2. 제3의 장소     

레이 올든버그는 책 <제3의 장소>에서 어린이들이 ‘어슬렁대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어른들과 함께 자유롭게 어울렸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3의 장소’는 나이에 상관 없이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었던 펍이나 커피숍 등 중립적이면서도 따뜻한 장소입니다. 이곳엔 대체로 어린이들도 출입할 수 있었죠.     

아이들은 가게의 ‘민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식당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20세기 초중반 리버파크의 아이들이 어떻게 가게에서 돈도 없이 앉아 놀면서도 가게 주인, 손님과 어울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리버파크의 아이들은 메인 스트리트에서 때와 장소, 즉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에서 놀아도 되는지를 금세 배웠다[...]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에 음식점에 가면 한구석 칸막이 좌석에서 포커 게임을 하는 여덟살짜리 아이들을 볼 수도 있었다. (중략) 아이들은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그 장소가 살아있게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레이 올든버그, <제3의장소>(이하 동일)”     

즉 리버파크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관찰하고 어른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관습과 예절을 배웠습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엔 적당히 노닥거리다가, 손님이 많아지면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고 일손이 부족할 땐 가게일을 자진해서 돕기도 했죠. 아이들은 손님이 없을 때도 북적이고 항상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므로 가게 주인들로서도 그닥 손해가 아니었다고 하네요.     

술 마시는 어른과 아이들이 뒤섞여 있는 게 자연스러웠던 ‘폴라야 클럽’에서도 아이들은 점잖게 굴었습니다. 바텐더가 아이들에게도 어른과 똑같이 진지하게 대해줬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바텐더 앞에서 자신이 마치 어른이 된 것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즉, 바텐더는 어린이를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취급해주었던 것이죠.     

통상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항상 제멋대로 울부짖고 소란을 부린다고 생각하지만아이들은 어른과 같은 대접을 받게 되면 스스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의젓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 책에는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 한 동료의 이야기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어렸을 때 항상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네 드러그스토어에 가서 어른들의 대화를 두근대며 들었던 경험을 두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경험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드러그스토어에서 아버지 옆에 앉아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정치와 사회 문제를 배우고 일찌감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교과서나 동화책만으론 얻기 힘든 경험이었죠.     

동네가 아이들 역시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주었기에 아이들은 어른처럼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예절과 삶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책 내용을 소개한 칼럼의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제3의 장소 그리고 제 3의 시간, 제 3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아이들이 성인의 역할 놀이를 할 수 있고, 그런 아이를 진지하게 동등한 인격자로 받아들여주는 공간. 그런 기회를 충분히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오케이키즈존이나 웰컴키즈존은 대안이 되기 어렵습니다. 저희 정치하는엄마들은 오케이키즈존과 웰컴키즈존에 대해 우려합니다. 오케이키즈존은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그쪽으로 가라는 정당한 대안이 될 뿐 아니라, 사회와 아동과 양육자를 만나게 하기보다 분리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육의 공공성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평가와 비난으로만 이뤄지는 현실. 이 속에 빠진 고리는 많은 시민들이 아동을 모르고 아동을 겪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단절된 양육자와 아동들 역시 사회와 소통하는 공간과 기회와 경험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특정한 누구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환대를 제공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경향신문의 기획연재 “투명장벽도시”에 따르면 다이애나랩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독립예술창작집단 다이애나랩은 2018년부터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고,  햇수로 5년째. 카페, 식료품점, 빵집, 음식점, 병원, 약국, 운동센터, 서점 등 30여곳이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정부에 오케이키즈존이 아닌 제3의 공간, 차별없는가게 등을 제안합니다. 공공기관에서 새로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동네에 기존에 모든 세대가 방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간이 아이들과 양육자도 아우르는, 차별 없는 공간이 되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교육 역시 이러한 취지로 양육자만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아니길 바랍니다. 매너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받는 것보다 서로를 이해의 원 안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양육자와 아동, 

비양육자가 함께 참여하는 교육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2-4. NO 노매너존     

도시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의 놀 곳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제3의 장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린이, 청소년은 성인과 함께 있음으로서 사회 규범을 배우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비용을 낸 만큼 방해받고 싶지 않은 고객과 영업의 이익을 취해야 할 업주와의 이해관계와는 아직도 상충된다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위는 헌법과 UN권리협약을 기준으로 “노키즈”라는 전면적인 접근 금지 대신 좀 더 적극적으로 방해 행위에 대한 조치를 공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즉,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차별을 덜 하고도 가능한 다른 방법이 있는가?’에 해당하는 조치입니다.       

    

노키즈존을 비롯해 노OO존은 우리 사회의 무관용성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산만한 행동과 울음소리, 어르신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느린 학습 등은 악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다른 구성원이 비의도적으로 끼치는 불편함에 대해 관용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나에게 아무 불편함을 주지 않는 존재만 모아놓은 사회가 존재할까요? 인간은 일생동안 다른 사람을 불편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00년의 인생동안 다른 이의 도움과 관용과 이해 없이 독립적으로 생존가능한 시기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흔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 아이인 적이 있었고, 이제 곧 노인이 됩니다.     


“노키즈”-어린이, 양육자, 청소년 혹은 “노시니어존”, “노유투버존”, “노래퍼존” 등으로 『존재』로 기회를 박탈할 것이 아니라, 『특정 행동』을 근거로 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소방안전교육이나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하듯이 공공장소 예절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2022년 어린이날을 맞이해 실린 한겨레의 기사의 일부와 저의 자녀들의 노키즈존 반대글을 공유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대통령 된다면 뭐 하고 싶니?어린이들 답변은 어른보다 낫다 이유진 기자     

어린이날 100주년을 하루 앞둔 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전국 초등학교 4~6학년생 1841명에게 어린이 존중 및 사회인식 영역 등을 주제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통령이 된다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주관식)에 ‘차별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245명)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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