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래터 Feb 14. 2022

가설 없이 기획한 어느 서비스에 대하여

어느 서비스 기획자의 뒤늦은 회고 (4)

위 세 편의 글에 이어지는 글이다.


비단 어느 컨설팅펌 또는 전략기획실의 사업/전략기획, 혹은 유명한 브랜딩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모든 업무에는 '기획'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초기에, 기획 업무와 관련된 서적을 여러 권 훑어봤다.


대개는 사이먼 시넥의 골든 서클(Why-How-What)을 인용했고, 현실(as-is)과 목표(to-be)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입사 초기 업무를 피드백받던 때에도, 또 내가 다른 이의 업무에 피드백을 할 때에도 Why-How-What은 문서에서 빠지지 않은 단어였다.


0. 배경 : 이 업무가 논의, 시작된 맥락이 무엇인가?  

1. Why : 최종적으로 얻고 싶은 게 무엇인가

2. How : 이걸 어떻게 달성할 건가

3. What : 그걸 얻기 위해 구체적인 실행안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보니, 늘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기획의 가장 흔한 프레임 Why-How-What


웹앱 서비스 기획을 담당한 초창기, 프로젝트의 기획안을 작성했다. 이미 하기로 결정된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을 정하기 위해 뒤늦게 작성한 문서였지만, 업무의 배경과 맥락, 목적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래서 평소와 같이 문서를 정리했다.


0. 배경 :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전 지점의 사용자에게 동일한 사용경험을 제공하고, B2C 상품의 판매 창구를 마련하려 한다.

1. Why : 전 지점 사용자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와 신규 B2C 상품 판매 창구를 마련하기

2. How : 홈페이지 구축 프로그램을 통해 웹앱을 구축한다

3. What 세부적인 기능안

 - 회사/브랜드 소개 페이지

 - B2C 서비스 판매 기능

 - 회의실 예약 기능

 - 게시판 기능

 - 회원 권한 관리 기능


단출한 업무 task나 혹은 구현 여부만으로 성공을 판단하는 구축 프로젝트의 경우 이러한 전개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전략적으로 필요하여 웹앱을 구축하기로 했고 (Why) , 다만 자체 개발팀이 없으니 외부 설루션을 이용하기로 했고 (How). 구체적으로는 5가지 기능을 구현하기로 했다. (What).


여기에 추가적인 내용이 필요하다면 그래서 누가 무얼 할 건지, 목표 일정과 예산은 얼마나 되는? 등일 것이다. 예상한 일정과 예산 내에, 위의 5가지 기능을 완수하면 프로젝트는 끝이 난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목적 why는 달성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론칭을 완료한 서비스의 지속적인 성장 growth을 위한 작업에는 Why-How-What의 프레임 워크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서비스의 지속적인 성장 growth을 위한 작업에는
Why-How-What의 프레임 워크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Why-How-What의 프레임 워크가 놓치는 것들


문제는 서비스의 성장 growth을 위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업무들에서 발생했다.


1. why-how-what으로 계획한다고 꼭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2.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없었다. 실망만 남았다.

3. 그래서 다음번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4.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why-how-what으로 새로 기획한다.

5. 그렇지만 또 실패한다.

6. 결국 누구도 뭔가 선뜻 나서지 않는다.


우선 서비스의 성장을 위해 하는 업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건 바로 '무얼 하든 우리는 결국 틀린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목표는 어떤 식으로든 실패한다. 우리의 계획은 어떤 부분에서라도 어긋난다. 우리 상상과 희망은 현실에선 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100% 성공할 기획을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실패와 예상과 다른 결과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틀림'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선, 애초에 정확한 '예측'이 있어야 한다. 그걸 우린 가설이라고 부른다.



무얼 하든 우리는 결국 틀린다. 그렇다면 배워가는 것이라도 있어야 한다.
'틀림'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선, 애초에 명확한 '예측'이 있어야 한다.
그걸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Why-How-What에는 이러한 내용이 빠져있다.


결국 Why-How-What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만 필요한 기획이다. 그 기획이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 거기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통해 다음 시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다루지 못한다.


가설과 검증, 그리고 학습이 없는 Why-How-What은 반쪽짜리 프레임이다.



가설로 기획하고 검증으로 학습하여 다시 기획에 반영하기


우리의 모든 기획은 결국 실패한다.

우리의 모든 예상은 결국 빗나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배워가는 것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Why-How-What은 실행 후의 결과, 학습한 점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이러한 전제를 인정했을 때, 우리의 기획은 아래와 같은 식이 되어야 한다.

 

1. why-how-what으로 기획한다.

어쨌든 최초에 이 모든 논의가 시작한 배경과 맥락이 있고, 그걸 통해 얻고자 하는 비즈니스적 목표가 있다.

이걸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2. 이러한 행동을 하면 누구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가설 / 예상)

어쩌면 why와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why는 어디까지나 목적과 배경일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통해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 같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3. 그런데 실제로는 그 일이 이렇게 나타났다 (검증 / 결과)

애석하게도 우리의 기획은 실패했다.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4. 이걸 통해 우리가 알아낸 것, 배운 것은 이것이다 (알아낸 것)

우리의 기획이 실패로 돌아간 시점부터  해야 할 일은 그 책임자를 찾아내 추궁하는 게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예상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배운 것, 알아낸 것이다.


5. 배운 점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시 why-how-what을 한다.

새로운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이걸 우리의 교훈으로 삼아, 원래의 목적과 배경을 다시 상기하며 새로운 시도를 계획한다. 이번엔 how와 what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등을 고민한다.


6. 이 사이클을 반복한다.

이 과정이 애자일 agile이고, 린 lean이다. 고객에 대해 배우고, 우리의 방법과 실행안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빠르게,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것.


 고객에 대해 배우고, 우리의 방법과 실행안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빠르게,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것.



알고 있는 것, 알고자 하는 것, 알아낸 것, 여전히 모르는 것



결국 우리의 모든 활동은


1. 지금까지의 실행과 결과, 학습을 통해 알고 있는 것

2. 이번 실행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것

3. 이번 실행의 결과를 통해 알아낸 것

4. 여전히 모르는 것


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문뜩 철학적인 이야기가 생각난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 무언가를 알고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 뿐인 거 아닐까? 그렇지만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원하는 걸 알기 위해 우리가 알아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비단 추상적인 이야기로만 남지 않는 것은, 우리의 모든 활동이 기획이고, 기획이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새로운 걸 알아내고,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고자 하는 활동이기 때문은 아닐까.



더 많은 지식과 경험, 노하우가 궁금하다면

홈페이지 방문하기

뉴스레터 구독하기

이전 20화 고객의 생애 주기에서 우리 서비스는 어디를 차지하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