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라면 한 번쯤 푹 빠져 지낸다는 ‘로봇’에 꽤나 열정적이었다. 로봇이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을 시기라 관련 다큐멘터리도 쏟아져 나왔기에 아이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로봇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곤 늘 주말이 되면 과학 관련 행사에 참여했다. 과학관은 물론이고 과학고 학생들이 진행하는 학생행사에도 참여해 과학과 늘 가까이하는 아이로 자라게 했다. 이렇게 노력을 하였기에 아이의 꿈은 ‘로봇 공학자’였고 아이가 보았던 로봇 다큐멘터리에서 세계의 로봇을 제치고 카이스트 학생들이 1등의 영광을 차지했기에 아이의 꿈은 ‘카이스트 로봇 공학자’였다. 뿌듯했다. 엄마로서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카이스트에 갈만한 성적을 받아오지 않으면서 기대를 고이 접어 추억으로 남겨 두었지만 말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꿈을 실현할 수 있으니 ‘로봇 공학자’의 꿈을 언제나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말로 ‘카이스트’를 뿌리고 다니니 입으로 뿌린 씨앗이라도 그 효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도 했다. 자신의 목표가 뚜렷할수록 모든 생활이 아이를 바르게 지켜 줄거라 믿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의 꿈이 사라지지 않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진로적성 검사’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자신의 진로를 얼마나 잘 찾고 있는지에 대한 검사를 하였다. 자신이 선택한 진로가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대한 생각을 점수로 채점해 수치로 보여주는 표를 가지고 왔다. 매번 다른 검사에선 뛰어나거나 뒤쳐지는 것이 없는 정상범 위안에 들었던 터라 이러한 검사가 아이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섯 살 무렵에 했던 ‘영재 검사’에서는 다들 자신의 아이가 갖는 영재 지수에 울고 웃을 때, 평균적인 영재 지수였지만 창의성 만점으로 향하는 아이의 앞날이 더 빛나 보였다. 그리곤 우리 아이를 통계적으로 나타내는 수치를 볼 때면 아이의 진짜 모습을 다 담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스스로 체크한 진로적성 검사 결과지를 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표준보다 한참 위인 만점에 다다를만한 점수들. 자신의 꿈을 돈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잘 될 거라는 확신 있다는 아이의 대답이 멋져 보였다. ‘멋있다’고 치켜세웠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올바르게 하는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어릴 땐, 스스로 생각을 넓힐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기에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경로들을 마련해 줬었다. 그리고 나선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아이의 꿈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현재의 꿈을 물어보았더니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했다. 모르겠다. 아이가 갖는 꿈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아이가 하는 말도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나보단 컴퓨터를 더 잘 만지는 것을 보니 컴퓨터 관련 일을 해도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꿈을 찾는 아이에게 ‘네 꿈이 자랑스럽다’라는 말만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로봇이라는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일들이, 꿈이 바뀌었다고 해서 허무한 일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갖는 생각을 응원해 주었던 지난날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선택하는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선택을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생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뉴스를 보며 아이가 말을 건넸다.
“엄마 난 화이트해커가 될 거예요.”
“블랙해커 반대말 화이트해커? 엄마도 그거 알고 있어!”
“지금 건강보험센터의 전산이 마비됐잖아요. 어떤 오류 인지 화이트해커가 해결할 수 있어요. 저는 컴퓨터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 도와주는 일을 할 거예요.”
“와 진짜 멋지다.”
로봇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연관이 되었던 것 같다. 관련 일이니 ‘컴퓨터 프로 그래머’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장래희망이 결정되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화이트 해커’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앞날을 설계했던 것 같다. 앞으로 또 다른 꿈들이 펼쳐질지는 모르겠다. 아직 어리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어떠한 직업을 갖게 되던 그 꿈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고 나아가선 내 꿈이 다른 이들까지 행복하게 해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돈이라는 물질적이 테두리가 아닌 진짜 행복을 찾는 아이의 마음이 예뻐 보였다.
아이의 꿈에 대해 곰곰이 따져 보았을 수도 있다.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미래가 되어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기준으로 말이다. 아직 아이는 행복을 먹고 자라야 한다. 현실적인 기준은 내가 아니라 아이가 나중에 되어서야 스스로 찾게 되는 문제 일수도 있다. 나의 기준이 아이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하는 말들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모습만 보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