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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Sep 28. 2021

사춘기 공부

너는 네 삶의 주인

‘아무것도 몰라요’ 눈빛을 장착하고 엄마의 이야기에 두 귀를 쫑긋 할 때가 있었다. 초롱초롱했고, 반짝반짝했고, 똘똘해 보였다. 순수함 그 자체였다. 사춘기가 됨을 첫 번째로 직감할 때는 그 순수함 가득하던 눈빛이 달라졌을 때였다. 나의 경우엔 그랬다. 아이의 눈에 피곤함이 가득했고, 눈을 크게 뜬다기 보단 억지로 반쯤 걸친 초점 없는 눈빛이었다. 귀찮고, 귀찮고, 또 귀찮아하는 그러한 눈빛이었다. 눈빛을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인생 왜 사나요’로 정의해볼 수 있겠다. 너무 순수했던 아이라서 더 많이 티가 났다. 차이가 커서 그런지 아이에게서 온 사춘기가 확연히 보였고 확실했다.


낮에도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기에 ‘피곤하냐’고 물었다. 그리곤 ‘할 게 없어서’라는 답을 들었다. 할 게 없어서 잠을 잔다니. 몸에 에너지가 넘쳐서 엄마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할 게 없다고 하는 말이 신기했다. 너무 피곤하게 할 땐 ‘이제 그만 잠을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할 게 없어서 자는 건 원치 않는다. 예의 없이 친구랑 문자를 주고받길래 핸드폰을 며칠 압수한 것이 화근이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잠이라도 자겠다는 말은 핸드폰 없이 못 사는 아이처럼 비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눈빛과 행동이 달라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도 저도 싫다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으리라 싶었다. 그리곤 도움을 주기 위해 아이의 생활을 주의 깊게 보았다. 그 흐리멍덩한 눈빛이 가끔 동그래질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이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할 때였다. 심지어 반짝반짝, 초롱초롱까지 장착했다. 아이가 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 성교육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본 적이 있었다.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책이었지만 기회가 온 것 같아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렇게 교육을 하는 것이라면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듯했다. 성교육이 어렵게 느껴질 때쯤 나와 생각과 성격이 비슷한 책을 찾게 되었다. 여러 가지 책을 본 덕분에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성을 받아들이고 교육받는지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엄마의 사춘기 공부’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성적인 존재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르기에 당연히 나와 다른 이성에 끌리고 관심을 받고 관찰하고 싶은 것은 내 안에 있는 호르몬이 잘 분비하고 있다는 증거 일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몸의 변화를 부끄럽고 불행하다고 여긴다. 그리곤 알음알음 들은 것들로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이렇게 공부를 해야 아는 것들인데 아이들이 하는 말과 생각들이 과연 옳을까. 성의 축복된 과정을 쾌락의 결과만 연결 지어 버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귀하고 축복된 존재 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과연 아이와 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어 미루고 미뤘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생각들이었다. 이야기를 전할 땐 상대가 바르게 생각했는지 생각을 들어야 내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나는 옳게 설명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아는 것과 다르다며 혼자만의 상상을 하라고 두기엔 위험하다. 그렇기엔 일대일 대화가 성이라는 부분을 설명하기에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오히려 부끄럽다고 여기는 성을 아이와 가장 가까운 부모가 제대로 알고 전달하는 것이 아이가 성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 들일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용기를 냈다. 그리곤 책을 펼치고 성에 대해 올바르게 배워보니 사실은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당연하고 예쁜 것들이 이었다. 가슴 벅차게 축복되고 감사한 것들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아이와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가르치는 부모가 정확성이 떨어지거나 가르치는 방향이 자주 바뀐다면 아이에게 올바른 교육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달해야 하는 부분을 정리해서 학습목표를 세우고 그 부분에 관한 한 가지씩만 하루 30분이 넘지 않게 알려주었다. 그리곤 아이가 이야기를 전달한 부분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옳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음번 학습계획에 추가하여 아이가 마음속에 궁금한 것이 남아있지 않게 가르치려 노력했다.


성교육 마지막 날, 아이는 엄마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앞으로 엄마에겐 못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요.” 아이와 내가 더 가까워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곤 게슴츠레한 눈도, 엄마는 ‘몰라도 돼요’했던 말투들도 모두 다 사라졌다. 세상을 비뚤어지게 바라보았던 눈빛과 생각들도 사라진 듯했다. 사춘기의 시작은 성교육과 함께라고 말하고 싶다. 은밀하고 불편한 것들이라고 여겼던 생각들을 부모가 함께 고민해주고 생각해주니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춘기의 아이와 가깝게 지내려면 아이의 고민을 들어줘야 한다.


아이들은 성을 미디어를 통해 배우는 경우가 많다. 충격적인 것들을 먼저 접하는 셈이다. 포털 메인 페이지만 보아도 아이들이 성을 모르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하지만 성에 대한 올바른 생각이 잡힌 아이들에겐 이러한 노출도 두렵지 않다. 성은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부모가 올바르게 배워 가르쳐야 한다. 호르몬의 변화를 제대로 알고 배우는 것이 사춘기의 첫걸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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