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벨 Oct 12. 2021

비뚤어진 사고방식

괜찮아, 과정이야.

어둠이 내린 저녁시간, 달달한 음료수를 하나씩 사 먹자는 아빠의 제안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따라나섰다. 앞이 보지 않을 만큼 어두웠기에 걷기를 바랐던 어른들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들은 킥보드를 하나씩 들고 집 문을 나와 보도블록을 신나게 타고 달렸다.  탔으면 좋겠지만 탄다면 조심해야  어두우니까. 앞에  보고. 천천히 알지?”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을 때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울툴불퉁한 보도블록에 엎어졌다. - 아마도 아이의 아픔의 소리보다 놀란 부모의 소리가 더 컸을 거라 생각이 든다. 아이의 마음은 더 놀랬겠지만.


내가 이래서 어두울  타고 나오면  된다고 했지, 타기 전에도  때도 분명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간 넘어질 수도 있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던  듣는  마는  하더니 결국 다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빠의 잔소리가 아이가 느껴야 할 아픔의 고통을 막아버렸나 보다. 치료를 위해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괜찮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이는 괜찮다는 대답을 여러 번 늘어놓았다. 그때까지는 피가 흐르지 않았기엔 정말 괜찮은 거라 생각했지만. 밝은 곳에서 본 아이의 무릎은 전혀 괜찮을 리가 없었다. 피가 꽤 많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팠겠네.”

아뇨,  아파요.”


상처부위를 치료할 때 분명 ‘아프니 살살하세요.’라는 말을 해주면서, 아프냐고 물으면 절대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프지 않다고 말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면 지금 당장은 아이를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빠의 다그침의 잔소리가 사실은 걱정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랬고 분명 생각과 마음이 커가는 중이니 그러한 생각 또한 잘할 거라 믿었다.


다음날 오후, 다친 곳의 상태를 보기 위해 무릎을 보여달라는 엄마의 부탁에 아이의 얼굴에 짜증과 분노가 가득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제 말이야. 네가 다쳤을 , 아빠가 다그쳐서 많이 속상했지?”

괜찮아요.”

아빠는 사실 네가 킥보드를 타고 나왔을 때부터 걱정스러우신  같았어. 어젠 밤도 너무 캄캄했고, 네가 늦은 밤에 외출한다는 말에 신이 났었잖아. 그래서 킥보드를 세게 타고 달리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행동이 넘어질게 눈에 보이니 걱정스러운 말을 먼저 하셨는데. 네가 조금도 듣지 않았거든. 아빠 마음을 이해할  있겠어?”

글쎄요..”

.. 너는 누가 넘어져서 다치면 어떤 마음이 들어?”

화가나요…”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화가 난다는 아이의 대답에 아이에게 건네야 할 내 의도와 생각이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침착하게 아이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넘어지고 나서 느낀 아픔보다 부모의 뜻대로 하지 않아 전달된 화가 아프다는 자신의 감정을 밀치고 들어온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픔이라는 당연한 감정을 꾹꾹 누르고 괜찮다고 말하니 아픔의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화라는 감정이 자리 잡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혹시 화나는 감정 말고 누군가가 다쳤을  드는  다른 마음은 없을까?”

아프겠다..? 안쓰러움?”

맞아. 내가 다친  아니지만 다친 상처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아프겠다. 얼마나 아플까. 하는  말이야. 그게 바로 걱정이야. 아빠는 어제  걱정을  거야. 걱정을 화로 표현해서 잘못된  맞아. 자신의 우려와 걱정이 현실이 돼서  아프게 해서 화가  거야. 하지만 아픈 너에게 화로 걱정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었어. 너의 입장에서 너의 아픔을 어루만져줬어야 했겠지. 아빠의 잘못된 걱정으로 인해 네가 느꼈을 아픔을 아빠에게도 이야기해줄게. 아빠는 분명 미안해하실 거야.”



완벽해 보이는 어른들도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실수를 통해 현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이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가끔 말도 안 되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 우리 아이가 못나서가 아니라 사춘기라는 마음이, 좋은 길로 데려다주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좋지 못한 선택지를 고르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한 번은 좋지 못한 행동으로 어른이 되어 걱정을 살 부분까지 논하게 되었을 때, 자신도 무서웠다는 말을 했었다. 무섭고 빠져나오고 싶었다고. 아이의 비뚤어진 마음 또한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생각을 바르게 잡아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건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기회다. 한 순간의 잘못된 마음이 더 큰 불씨가 되지 않도록 잡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럼 그렇지'가 아닌 '그럴 수도 있지'의 이해심으로








이전 05화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