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벨 May 07. 2021

스트레스도 선택 인걸

분명 잘하게 될 거야.

해야 할 일들을 일러주고 돌아설 때, 그것을 다 해놓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더구나 바쁜 아침은 여러 번 믿지 못할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설마’를 뒤로한 채 새로운 믿음을 데리고 온다. 곧이어 ‘발등’이 쾅하고 찍혀도 아프다는 소리는 준비가 다 된 후에 해야 한다. 까딱하면 늦게 되니 말이다. 아침이 전쟁 같은 건 회사를 다니나 전업주부로 아이를 키우나 마찬가지다. 아침은 곧 전쟁이다. 방학도 예외는 아니다. 방학이라는 접착제로 바닥에 들러붙은 아이들을 떼어내어 밥을 먹이고 준비된 일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발은 제대로 신었네’부터 안도의 한숨이 세어 나왔다. 부리나케 준비했던 모든 흔적들을 지우며 아침에 아이를 깨웠던 일부터 곱씹어 본다. 역시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불편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곤 마주한 아이에게 갑절의 반가운 마음을 표현했다. 떠밀어 보낸 학교에서 잘 지내준 아이가 내심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때, 귀찮아하지 않고 다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먹을 음료수를 사러 음료수 가게에 갔다. 아이들은 새로운 메뉴를 늘 탐색 하지만 매번 고르는 건 늘 같은 메뉴이다. 아이의 음료수와 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놓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한참 기다렸을 무렵 우리의 번호가 호명되고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의 음료수를 손에 잡은 순간, 뭔가 많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손에 잡은 아이의 음료수가 따뜻했기 때문이다. 매번 늘 같은 메뉴를 주문했지만 시원한 음료인지 따뜻한 음료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신메뉴]라고 적힌 광고지에서 얼음이 동동 띄워진 음료였기에 따뜻한 음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매번 시원한 음료를 알아서 주셨기에 더 그랬다. 주문한 영수증을 확인했지만 말한 적도 없던  (HOT)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뜨거운 음료를......” 왜 그러시냐고 묻는 직원의 말에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기에 따질 수도 없는 복잡한 마음을 꾹꾹 눌러 놓고, 우선 아이의 의향을 물었다. “어쩌지, 뜨거운 음료가 나와 버렸네, 집에 가서 얼음을 좀 넣어 줄까? 아님, 다시 주문을 할까?”아이가 당황스러운 직원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괜찮아요. 따뜻하고 좋은데요?”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아이의 생각지도 못한 너그러움에 직원의 탓을 할뻔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이의 마음이 예뻐서 일까. 음료수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찬바람이 불었다. 아이는 연신 차가운 것이 나왔더라면 추웠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세상 이치를 따져가며 잘잘못을 따지는 것에 익숙한 어른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녹일 수 있는 것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예쁜 아이의 마음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도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고도 당연한 일들을 해야 했다. 아이가 수학 문제집 한 장을 채 풀기 전에 입꼬리가 잔뜩 내려간 채로 엄마의 얼굴을 사연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요즘 자신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다고 했다. 수학 문제를 풀다만 손이 그 이유를 알려주는 듯했지만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물어보았다. 때때로 다르다고 했다. 분명 오늘은 수학 문제가 스트레스를 가져다준 것을 알고 있지만 추측을 묻어둔 채, 그럼 오늘은 어떤 스트레스인지 물어보았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의 똑같은 훈계를 듣고 싶지 않은 듯했다.


“오늘 음료수 가게에서, 내가 주문한 음료수가 아닌 다른 음료수가 나왔을 때 너는 선택을 할 수 있었어. 왜 내가 주문한 음료수가 아닌지 따지며 직원분과 너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인지. 아니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인지. 너의 너그러운 선택으로 직원분과 네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음료수를 맛있게 먹었어.


스트레스도 선택인 거 같아. 네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수 있을만한 너그러운 생각을 지닐 수도 있지만 너는 스트레스받을 상황을 선택한 거야. 오늘 가게에서 있었던 일처럼,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너그러운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도와줄 수 있어.”


아이는 말없이 엄마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곤 수학 문제를 이어서 풀어갔다. 분명 수학이라는 어려운 일들이 아이의 마음을 너그럽지 않게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아이가 꾹꾹 입을 다문 이유라서 더 이상 아는 채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린 수많은 선택을 한다. 버스를 탈까. 걸어갈까. 점심은 뭘 먹을까. 의자는 어느 곳에 둘까. 사소한 선택부터 중대한 선택까지. 분명한 것은, 내가 한 선택은 나 혼자 오롯이 감당한다는 것이다.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고 억울해도 안 되는 선택의 결과는 나를 지치게도 또는 힘을 내게도 한다. 인생을 이제 시작하는 아이의 선택이 아이가 잘 감당할 수 있기를. 현명하고 바른 최선의 선택이기를 바래본다.





이전 07화 사춘기 공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