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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19. 2021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괜찮아, 과정이야

내가 내 아이의 나이일 때 엄마는 가끔 용돈을 주셨었다. 말없이 쥐어주시는 용돈의 액수는 우리 집 형편과 내 나이에 비해서 굉장히 큰돈이었는데,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그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큰돈을 손에 받아 들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눈동자의 어린아이. 갑자기 주신 용돈은 많은 생각을 몰고 왔었다. 무슨 이유로 주신 것인지, 돈을 쓰길 원하는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 후로도 종종 엄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을 가끔 하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사다 주신다던가 당시에 유행하는 패션 잡지를 사다 주시기도 하셨다. 


내가 엄마가 되고 어릴 적 지나왔던 나이의 아이도 키우게 되니 엄마의 의심스러운 행동들이 이제는 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 당시의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특별히 힘들거나 슬프거나 외롭지도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을 뿐이고 억울하면 화내거나 슬프면 우는 일들은 당연한 감정을 토해내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다른 이들은 '사춘기'의 특수한 증상으로 보는 듯했다. 좀 더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감정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로 아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아이의 입장이 되어본다. 어릴 적 수없이 듣고 따라 불렀던 노래 가사의 일부가 귓가에 맴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나라면 그럴 수 있겠니'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결론이 들 땐 그나마 나은 일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의 이해란 굉장히 쉽고 무난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충동적인 생각과 행동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른 척 하기엔 이미 머릿속에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버리고 화가 목구멍까지 빠르게 전달되기에 눈을 질끈 감을 수가 없다.  


아이를 아프게 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도려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 아이를 평온하게 내버려 두라고 타이르고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러한 일들이 있었을까. 동일하게 주어지는 성장이 나에게 없을 리가 없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지나쳤을 리가 없다.


누군가가 너의 사춘기는 어땠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잘 지내왔다고 이야기한다. 별다른 투정이나 반항 없이 무난했더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당시 엄마의 행동을 본다면 무난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나의 기억은 무난하고 평범하고 불편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이가 겪고 있는 '사춘기'의 특별한 증상들은 아이가 느끼기엔 특별한 일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추억으로 여길 일상적이고 대단하지 않은 일들의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만 아이의 다른 모습을 처음 겪게 된 부모의 눈엔 아이의 모든 행동에 이유를 들고 무게를 잰다. 그리곤 '사춘기'라는 도장을 이마에 쾅하고 찍어 무슨 행동을 하던 사춘기니깐 이라는 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덮어 두려 한다.


얼마 전 사춘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보려 '지식백과'를 검색하다가 새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체가 성장함에 따라 성적 기능이 활발해지고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 [네이버 지식백과]' 누구나 알만한 내용들 사이에 눈을 번쩍이게 하는 말들도 포함하고 있었다. '정서적 변화 및 인지적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보는 인식이 퍼져 있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며 비윤리적인 행동, 난폭한 언행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춘기에 그런 거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오히려 고정관념들이 청소년들에게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끔 부추긴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심리학자들의 주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서적 변화들이 일어나는 시기에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들마저 사춘기의 증상처럼 아이를 이해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이를 오히려 바르지 못한 아이로 만들 영향이 크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아이가 겪고 있는 '사춘기'의 특별한 증상들은 신체의 변화에 따른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 것은 맞다. 하지만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들마저 토닥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일상 중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사춘기라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이해 가운데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렵다. 이해는 하되 어긋나는 일들을 주의시키는 것들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또한 어디까지의 이해를 바라는 것일까.


먼 훗날 아이가 크고 나면, 사춘기의 기억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그때 좀 힘들었지'의 말들은 아이가 아닌 부모의 입에서나 흘러나올 기억일 뿐이고, 아이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머나먼 옛이이야기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딱히 사춘기라는 타이틀이 아닌 그냥 자라나는 순간의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토닥이는 방법이 아이를 유난스럽지 않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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