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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19. 2021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

나에게도 사춘기

나의 모든 일정은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나를 위한 일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 혼자서 바람을 쐴 기회를 얻게 되어도 눈앞에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시간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러니 개인적인 시간의 사용방법은 알지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십여 년 이렇게 살다 보니 함께 하는 것이 익숙했다. 뭐든 같이 하는 것이 당연했고, 각자가 아닌 함께가 편했다. 난 이렇게 적응하고 이러한 방법 외엔 익숙하지 않은데 아이는 어느새 '자립'을 선언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부모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원치 않는 도움은 '간섭'과 '잔소리'라는 단어로 취급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여겨 다른 이의 생각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부모는 아이의 '자립'을 돕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지만, 자로 잰듯한 아이의 선 긋기는 섭섭하고 불안했다. 뭐든 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여겼던 아이의 생활이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간 듯했다.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되어버리니 아이가 없는 일상이 불안했다. 자신의 시간에 부모의 자리는 없다고 행동하는 아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아직 너는 엄마 품에서 더자라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아이의 닫혀버린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알겠어요'라고 대답하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바빴다. 산꼭대기의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다.


분명, 아이의 성장이 반갑고 당연하고 축하를 보내줘야 하는 일이지만 생각과 달리 마음이 허전했다. 괜스레 아이 방의 문을 한 번씩 열어보고, 혼자서 잘할 수 있다는 일들이 겨우 이것뿐인 것에 한숨도 나왔다. 감시하고 지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모든 행동이 의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지려는 책임의 무게가 무겁지는 않은지 시시콜콜 간섭했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이젠 아이의 자립을 축하해야 한다.


필요할 때만 관심을 달라는 것은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 관심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아이에게 묶여 있는 내 삶에도 자립이 필요함을 느꼈다. 내가 좋아했던 일들을 떠올렸지만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빈 공간에 다시 나를 불러들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들을 곰곰이 떠올리고 당장 하고 싶던 일들에 무게를 두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한 번쯤 도전해볼 일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도 '자립'이 필요한 시기임을 아이에게 알렸다. 하고 싶은 일과 그것을 하기 위해 해야 될 일들을 설명했을 때 아이는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다. 엄마의 시간을 존중하겠노라고 말이다.


우린 그렇게 각자 '자립' 했다. 묶여 있던 삶에서 각자의 책임감 있는 삶으로 자립하고 필요할 땐 힘이 되어주는 관계가 되었다. 때론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의 성장에도 자극을 받아 더 많이 노력하게 된다. 힘들 땐 토닥여주고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 도와주는 서로의 응원하는 사이. 각자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자립의 동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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