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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13. 2021

계속 나여도 괜찮을까.

나에게도 사춘기

은은한 이름을 가진 소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어려웠다. 잘 놀고 잘 섞이고 눈치 보지 않은 당당한 요즘 시대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누군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고 부끄러웠다.

 

그러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는 노래방이었다. 친구들과 가는 것은 그나마 괜찮지만. 분위기가 처지면 살벌해지는 회식장소로 그곳을 찾을 경우엔 더없이 끔찍했다. 그래도 노래 한곡 안 하냐는 소리를 듣기 싫은 나만의 노하우가 하나 있었는데. 노래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벽에 붙어있는 번호를 하나 얼른 찾아 두는 것이다. 그리곤  선택된 방의 문을 열리자마자 마이크를 들고 동시에 번호를 눌러 첫곡을 부른다. 내가 첫곡으로 분위기를 해칠 잔잔한 노래를 부르던 엇박자로 부르던 사람들은 자신의 노래를 찾느라 여념이 없을 때 얼른 한곡을 끝내 둔다. 처음으로 노래를 한곡 불렀기에 왜 노래 안 하냐는 말은 할리 없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지도 않기에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나는 노래방에 가면 항상 첫곡을 불렀다. 아마도 노래를 부를 때 모두가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제일 싫어했던 것 같다.


내가 수줍음이 많다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득 품은 포즈를 취하곤, 마음속으론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 '은은한 이름' 탓이라는 나름의 핑계를 대곤 했다. 자의든 타의든 부끄러움을 동반한 모든 행동엔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난 이래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 잡았나 보다. 모든 것을 이름 탓이라고 한들 개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 또한 은은한 성격 탓에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름이 나를 텐션 있게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나의 이름으로 가지고 온 수줍음이 오랜 시간 내 몸에 박제되어 이제 한 몸이 된 거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는 수줍음 따위는 벗어버릴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 뭔가를 의욕적이고 능동적이게 할 일들이 딱히 없어서 여전히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때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는 그때를 모두 놓치고 사는 것 같다. 내일. 다음. 하며 미뤄왔던 일들이 내 삶을 돌이키기 어렵게 한다. 오늘만 낼 수 있는 용기. 오늘만 할 수 있는 의욕. 마냥 흐를 것 같은 시간들. 모두가 사실은 정해진 때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멀어져 가는 세월이 돼서야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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