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일주일 후에 독일로 떠나는 비행기표 3장.
일주일을 머 문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표 3장.
그리고 숙소 주소.
석현아저씨가 건네준 봉투를 열어 보았다. 정말로 아버지의 계획이라면 믿기지 않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저씨가 머문 자리는 따뜻한 공기가 흘렀다. 아버지와 지선은 찬공기의 삶이었다면 아저씨는 따뜻한 삶이었을까. 아저씨가 말하는 고생은 아버지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가벼워 보였다. 결국엔 저렇게 좋은 차와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난 아저씨의 고생이 아버지와 바뀐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어디서든 희생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친구를 위한 희생을 더 값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머니가 계셨다면 얻지 않을 고생이었을 테고, 어머니가 계셨다면 지선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저씨가 가지온 비행기표보단 아저씨가 아버지 덕에 사셨을 따스한 삶이 지선을 쓰라리게 했다.
독일행 비행기표가 지선에게 가져다준 것은 크지 않았다. 지선은 어디든 떠났을 것이다. 현이가 원했던 도시이기도 했고 마침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적절하게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다. 아버지의 계획으로 움직이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 대한 계획 따위는 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나보다는 남을. 우리보다는 다른 이의 가정을 더 불쌍하다 생각했던 분이셨다. 그렇게 살았던 아버지와 나는 달랐다.
-엄마, 나 이 잘 닦았나 봐줘.
-잘 닦았는데. 앞니 위아래로 몇 번 더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뒤에도 꼼꼼히 하고. 대충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리고 이젠 네가 거울 보고 확인해야 해.
지선은 현이가 이를 다시 닦고 돌아왔을 때, 닦이지 않은 부분은 여러 번 지적했다. 하나를 잘 닦으면 다른 하나가 잘못된 이유가 되어 현이를 힘들게 했다. 평상시의 지선과는 다른 태도였다. 지선의 건조하고 단호한 말투는 현이의 작고 말랑한 가슴에 상처를 냈다. 토닥이거나 안아주면 금세 끝나는 간단한 일이지만 지선은 모른 체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미묘한 감정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언제든 왈칵 쏟아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감정이 뾰족하거나 말랑하게 치닫는 모든 상황에 물러서야 했다.
현이는 쌀쌀한 가을이 되어서도 모기장에서 잠을 잤다. 모기가 뜯기 좋은 어린 피라서 그런 건지. 모기가 먹고 싶은 혈액형인지 모르겠지만. 모기에게도 인기가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들 현이가 모르는 비밀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모기장에 크고 작은 구멍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긴 사계절 내내 현이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모기장에 구멍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법도 했다. 알게 모르게 생겨 버린 구멍들은 언제든 모기가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긴 충분했지만 현이는 모기장이 제일 안전한 모금자리 라도 되는 듯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모기장 안에서 잠이 들었다. 추위에 약해져 버린 모기가 집에 찾아올 힘조차 없을 계절. 단단한 것들로 무장하여 추위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계절이었다.
짧게는 3개월. 길면 4개월.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면 그쯤 된다고 했다. 만약을 생각해야 했기에 3개월쯤으로 생각해둬야 할까. 청청벽력 같은 말이 산다는 것과 시간으로 표현될 때. 서럽고 무서운 말이 된다. 지선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를 뵈러 방문했던 병원에서 가슴통증을 느꼈었다. 가끔씩 찾아드는 두통과도 같은 간단한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통제를 먹어도 잦아들지 않던 통증에 괴로워하다 아버지를 진찰해 주셨던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그리곤 3개월이라고 했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것을 알고 있던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많은 이들에게 삶의 남의 개월을 선고해 주시며 마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말해주셔도 되겠지만. 본인이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처럼 열리지 않은 입술을 억지로 떼며 삶의 남의 개월수를 입 밖으로 꺼내주셨다. 아버지도 이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해주시는 선고를 들었을 것이다. 떨리는 소리가 목을 타고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 순간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그랬을까. 나처럼 더 살고 싶으셨을까.
언제 가는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면, 남은 삶을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선 지선과 마주하게 될 때 희망이라는 단어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서류 뭉치를 연신 넘기더니 지선에게 허락된 희망이라는 단어를 설명하셨다. 선생님이 말한 한자릿수의 희망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간신히 얻어진 결과치였다. 겨우 한자리를 채운 그 숫자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절망보다 더 작은 수의 희망이라 느껴졌다. 눈송이가 흩날리는 날이었다. 선생님 뒤에 보이는 창가에 흩날리는 눈이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이렇게 예쁜날에 절망적인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친 선생님께서 가만히 지선의 눈을 바라 보셨다. 그리곤 따뜻한 손을 지선의 손에 위에 올려주셨다. 따뜻한 품에 안겨 있는것 같았다.
-누군가 이 자리에 저와 똑같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듣는 한 자릿수의 희망보다 더 큰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어요.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요. 그런데 저는 3개월의 고통을 겪으면 고통 없는 곳에 갈 수 있겠지만. 남겨진 가족은 평생 끝없는 고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파요. 오늘 당장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래도 3개월은 보장된 거니. 이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부터 저는 한시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볼게요. 잘 모르겠지만 고민해 볼게요. 적어도 남은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마지막은 따뜻했어요.
선생님께서 지선의 손을 꽉 잡아주시곤 지선의 삶을 애도하는 눈물을 흘려주셨다. 이렇게 전하는 자신은 작은 자가 된다고. 언제든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언제든 삶의 끝이 있을텐데 언제부터 카운다운이 시작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선 역시 그랬지만. 삶의 기한을 알게 된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매번 들렸던 병원에선 하얀 벽과 쇠로 된 안전한 것들에 의지한 통증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었다. 나는 그들의 아픔이 나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미닫이 문을 열고 아버지가 계신 병실에 들어설 땐 나의 아픔은 모래알이었다. 때로는 자신의 아픈 부위에 작은 신음과 극한 통증에 연신 간호사를 불러대는 사람들을 보며 저렇게 아파야 진짜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생사의 경계를 지나는 극한 고통을 느끼는 중환자실의 고통소리를 들으며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작, 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통증이 죽음에 가까운 통증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셨을까. 나를 이렇게 무뎌지게 만드신 분이라는 것을. 그리움이라는 단어도. 죽음을 말하는 통증도. 모두 무뎌지고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의 그리움과 아픔보단 당신의 그리움과 통증이 더 큰사람. 지선은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했다. 지선이 말하는 후회없는 삶은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말이었다.
병원에서 지어준 진통제 뭉치를 가방에 넣었다. 참 많다고 느꼈는데. 3개월치는 되어 보였다. 다시 오지 않을거라고 느꼈는지. 넉넉하게 챙겨주셨다. 그래도 사는 동안 고통을 조금을 더잘 견뎌보라고 다독이는 듯했다.
별것아닌 아픔이라 여겼던 몸을 찌르는 고통은 이제 숨길것도 없다는 듯이 견딜만한 고통에서 죽음의 고통으로 온몸을 조여 오는 통증이 더 자주 일어났다. 이렇게 3개월. 길면 4개월. 조금만 더 힘을 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