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지선에게 남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었다. 지선이 일을 하며 받는 대다수의 전화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전화였다. 감정을 한차례 거친 방법으로 토해 내고 나서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이리 줘요. 그 전화. 알아보고 다시 전화한다고 끊고 제가 다시 걸게요.
-고마워요. 지선 씨. 아니 괜찮겠어요?
-저는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지선이 다시 전화를 걸자. 여러 번 걸어도 해결되지 않은 일에 화가 나고. 담당자가 자주 바뀌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민원인은 열과 성을 다해 다시 한번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뭔 지랄이라고. 별일도 아닌 거를 아주 사람 불편하게 사람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듣고 있는 거야?
-네. 듣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부분 알아보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전화를 주셔야 해결이 되는데. 여러 번 기다리신 것도 있고. 더 불편하게 만들지 않게 도와드리려고.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괜찮다면 존댓말로 응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뭘 해준 게 있다고. 니들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여태껏 말씀해 주신 사항. 이미 전달받아서. 담당자에게 말씀드렸고요.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까지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빨리 해결이 되는 것을 같다가. 이 아가씨가 일을 잘하는구먼. 나를 막 화나게 하고.
그들에게 쩔쩔매지도 감정에 크게 동요하지도 않는 내겐 늘 그러한 민원인들만 있지는 않았지만 동료직원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까지 떠맡게 되니 이러한 전화를 받는 일이 업무가 되어 버렸다. 성난 마음을 토닥인적도 없지만 그들은 내게 자신이 늘어놓은 거친 말을 만든 상황을 탓하며 변명인지 사과일지 모를 말로 전화를 끊기 일쑤였다. 뭐라든 괜찮았다. 그들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지선에겐 천직이라고 생각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싫은 일들이 쌓여 지선의 업무가 되어버리니 아버지의 장례일정으로 자리를 비울 때도 얼른 돌아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지선의 감정이 무딘 거라는 동료들의 말들이 지선을 향해 아무 말이나 던져도 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제가 당분간... 아니, 회사를 못 다닐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말씀드려 죄송해요.
-아니, 지선 씨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일해. 어디 아픈 거면, 잠깐 휴직을 하고
-아니요. 계속 다니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전화로 말씀드려 죄송해요. 제가 조만간 가서 인수인계 할게요.
-아니, 인수인계가 문제 아니라... 그 전화 누가 받냐고.
팀장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호통이 되어 전화를 끊어 버리셨다.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내려놓았더니, 지선과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수차례 전화를 받았다. 지선을 걱정하는 말은 뒷전이고 지선이 했던 일들의 분담을 걱정하는 말들 뿐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쏟아 내던 민원인들보다 힘든 업무를 해야 할 동료들의 걱정과 한숨이 더 큰 상처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깨달았다. 그동안 지선이 살았던 삶은 듣고 싶지 않던 감정을 내 것이 아니라 부정했던 순간들이라고.
회사를 다니면서 불편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지만 내려놓으니 후련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도 그 내려놓음의 첫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죽더니 내 몫의 그리움이라도 생겨난 듯 지난날 겪지 못했던 마음이 이상하게 마음속에 들어왔다.
성난 민원인들보다 더한 그들의 일방적인 전화를 끊어버리고 복잡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감정을 이어받지 않는 건 내겐 너무 쉬운 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어려웠다. 지그시 꾹 눌러 밟았던 새하얀 눈이 신발 바닥에 붙어 우리 집 현관까지 오게 된 건 오늘의 모든 상황이 결정된 발단이 되기도 했다. 눈이 녹아 투명한 물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집안의 따뜻한 공기가 바깥에서 가지고 온 소복한 눈덩이를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사사로운 모든 것들이 가지는 의미가 하나하나 마음속에 눌러 새겨지는 날이었다. 현관에 생긴 물 웅덩이와 밖과 안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소한 바람마저 지선의 생각을 어지럽혔다. 지선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삑삑 삑삑. 소리가 연이어 4번 눌리더니 현관문이 철커덩 열리고 하나뿐인 지선의 아들이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지선을 바라보면 품에 달려들었다.
-오늘 왜 이리 일찍 온 거야, 아들?
-방학식날인 거 잊었어?
-아. 그랬었지.
-그래서 나 때문에 집에 있는 거 아니었어? 뭐든, 엄마가 있으니 너무 좋다. 반겨주는 엄마가 있어서.
반겨준 건가 딱히 그렇지는 않았는데. 엄마의 존재는 반가움인가 보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너는 잔뜩 가지고 있어서 너무 좋겠다. 특별히 뮐더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없었는데. 현이는 많은 표현을 하는 아이였다. 지선이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표현이 아들 현이의 입에서 늘 나왔다.
-엄마, 다큐 그거 보자. 건축물 다큐 그거.
-매번 봐도 질리지 않는 거야?
-응 너무 멋있잖아. 건축물도 그걸 만드는 사람도. 나는 나중에 가보려고 저기
현이는 세상 모든 것을 흥미롭게 보는 10살 남자아이다. 높은 건물도 낮은 건물도 그것을 세우는 과정도 현이에겐 재밌고 즐거운 소재였다. 그것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다큐는 현이에겐 늘 재밌는 이야기였다.
저녁이 되어 우리 셋은 몽글하게 끓여진 카레를 비벼먹었다. 카레를 한 숟갈 듬뿍 떠서 이제 막 익은 김치를 올려 먹었다. 남편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 더 열심히 먹었다. 오전 정류장에서 느꼈던 코끝을 간질거리게 하는 눈물이 눈 사이를 비집고 나오려고 하는 것을 카레를 잔뜩 뜬 숟가락으로 밀어 넣었다. 제발. 아직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전에 그게 무슨 말이야? 계속 쉬고 싶어?
-응 그럴까 해. 그냥 계속 쉴까 하는데. 여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현이 어릴 때 벌어두자고 했던 말들도. 미래를 위해 조금 고생하자는 말들도. 미안한데.
-그렇게 해. 그렇게 하라고. 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텐데. 그것도 의미가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고마워...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건 있어?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든 생각은. 여행.
-여행 좋지? 언제?
-내일이라도 당장.
지선은 뭐든 결정하는데 일주일 이상, 시간이 더 많다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했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일들도 결정을 못하면 안 되는 타이밍에 결정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지선에게 갑작스럽게 결정된 여행은 그녀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도현은 이해하려 노력했다. 여행지는 아들 현이가 가고 싶다고 했던 독일이었다. 독일의 건축물을 늘 그리워하고 보고 싶었던 현이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다. 도현은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당장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는 지선의 마음도 이해하고. 독일에 가서 현이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이해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지선이 가진 마음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작스럽게 독일에 가야 하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사실은, 석현아저씨가 찾아왔었어. 독일로 가는 비행기표를 들고.
석현아저씨는 아버지와 절친한 사이였다. 아버지의 그리움이 석현아저씨를 통해 나오기도 할 만큼. 어렸을 적부터 속마음을 터놓는 아버지의 유일한 단짝 친구였다. 그리움이 없던 석현아저씨는 아버지의 그리움을 늘 토닥였고. 아버지가 없는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었다. 나의 기억에 없는 어머니는 석현아저씨에겐 있었고. 아버지는 그러한 아저씨에게 많이 의지 했던 것 같다. 그러한 아저씨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보이지 않더니. 장례 열흘 후 내 앞에 나타났다. 독일로 가는 비행기표를 들고 말이다.
고급 외제차. 누가 봐도 알 수 있고. 지선도 알고 있는 외제차였다. 외제차를 카페 코너에 세우고 내리는 사람은 석현아저씨였다. 주차장이 있는 카페를 먼저 선택한 것도 아저씨였다. 카페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아저씨가 들어왔다. 외제차를 끌고 좋은 옷을 입고 온 아저씨는 어울리지 않는 애써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곤 아저씨 입에서 처음 꺼낸 말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말들이었다.
자신에겐 아내와 세명의 딸이 있다고 했다. 피아노를 잘 치던 첫째 딸과 그림을 잘 그리던 둘째 딸과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막내에게 자신에게 없는 부유함을 주고 싶은 평범한 아버지였다고 했다. 그래서 잃을 것이 적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던 거라고.
나도 알던 이야기다. 아저씨가 일구던 회사가 어려지자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대표로 세웠었다. 그리곤 얼마 후 갑작스러운 경영난에 시달렸다. 회사가 어려워질 것 을 이미 알고 회사에서 물러났던 아저씨의 계획과 회사를 물려받은 아버지는 곧 있을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토닥여준 정인지. 자신의 가족을 위한 다른 이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태도였는지. 누구나 알 수 있는 미래를 아버지는 떠안았다. 자신의 가정을 소중하게 여겼던 분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의 가정이 깨지는 것을 아파하던 아버지는 그곳에 다니던 모든 가정을 깨지 않으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셨던것 같다. 대표가 된 아버지는 부족한 점을 보완한 노력과 끈기로 새로운 곳에 납품처를 만들어 적자의 회사에서 흑자의 회사로 돌려놓으셨다. 아버지는 혼자서 뭐든 잘하게 된 딸인 지선을 홀로 두고 회사에서 일하며 주무셨다. 주말에야 가끔 지선을 보러 오셨는데. 그때마다 잘 컸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남처럼.
아버지가 일으킨 단단한 회사는 아저씨가 땀 흘려 일군 회사가 맞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피땀을 흘려 지켜낸 회사였다. 아저씨의 이야기가 추가되고 나선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나의 어머니의 이름이 석현아저씨 입에서 흘러나왔다. 35년 만에.
-소라는 이름도 참 예쁜 애였어. 그 당시에 없을 이름이었는데. 동네에 온 새로운 아이의 이름을 먼저 들었을 땐 이름이 예쁜 건가 특이한 건가 싶었는데 소라를 보곤 알았어. 소라는 예쁜 이름이더라고. 소라의 어머니는 굉장히 조용한 분이셨는데. 소라는 씩씩했지. 넘어져도 우는 법이 없는 애였어. 그래서 창석이가 좋아했을 거야. 소라하고 창석이가 서울에 간다고 해서 분명히 잘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만난 창석이는 소라의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더라고. 이겨내야 한다고 쓴소리를 많이 했었지. 소라는 다부진 애였으니까 자신처럼 창석이가 잘 키워 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회사가 어려워지고 나서 창석이가 자신에게 넘겨 달라고 했어. 네 가정을 깨지 말라고 잃지 말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변명이 되어 버렸네. 덜컥 넘기고 나서 이렇게 고생이 될 줄 몰랐던 것은 아닌데. 무너지는 회사를 잘 일구고 나서 다시 부르더라고. 네가 만든 회사니 다시 오는 게 맞지 않냐고...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데. 그 당시엔 그런 게 없었나 봐 다시 갔지.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이 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지난날을 꾸역꾸역 이야기하는 아저씨가 싫었다. 반가웠던 이름들이 이기심으로 아버지를 힘들게 한 아저씨의 입에서 나오는 지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아버지를 괴롭히던 이야기를 추억 삼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래서 아저씨 딸들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가정을 잘 지키셨어요? 차마 꺼내지 못한 말들에 목이 메었다. 아버지를 그다지 그리워하지도 않았는데.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그냥 아저씨의 이기적인 마음이 싫었던 것 같다.
-아마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창석이가, 나를 찾았어. 그리곤 부탁을 했지.
아저씨는 안주머니에서 하얀색 봉투를 꺼냈다.
-네 아버지가 부탁한 거야. 네 아버지가 죽고 나서, 떠날 비행기표.
아저씨는 탁자 위에 봉투를 올려두고. 내쪽으로 쓰윽 밀어서 내 앞에 두었다.
-네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는 방식을 사랑이라고 했어. 여태 돈이라고 생각했대. 물질적인 것이 많아야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은 거라고 그래야 지키는 거라고. 근데. 사랑이라고 했어. 가족의 행복과 사랑.
아버지 입에서 들어본 적이 없던 단어였다. 행복 과 사랑. 그리고 독일. 가족을 지키는 방식으로 다른 이의 아픔을 짓 밝은 건 옳지 않은 태도이지만. 아버지가 다른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짐작이 되었다. 힘들게 다시 일으킨 회사였지만 회사는 다시 무너 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끝까지 조그만 회사를 다시 만들어 남아 있던 직원을 살리는 방법으로 끝까지 희생하셨고. 아저씨는 끝내 회사를 나오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일군 회사에게 미안하다며. 모두에게 존경받을 만한 아버지였나 보다. 나는 그런 걸 느낀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건넨 아버지의 편지는 차마 열어보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마지막 미안함을 전하는 말이었다고 한들, 이미 단단해져 버린 내 삶을 녹여 버리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아버지만큼의 고생을 견뎌온 내게 편지 한 장의 이해와 용서를 내주기엔 내 인생이 가여웠다. 이 정도의 미움쯤은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