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33분.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타야 하는 버스가 떠난 후였다.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던 버스였는데. 소복하게 쌓여 버린 눈을 지그시 밟은 시간이 더 걸렸던 것일까. 누구도 밟아 보지 않았던 길로 돌아오다 정신을 차려보니 안 되겠다 싶어 뛰었는데 결국 놓쳐 버렸다. 들이마셨던 숨조차 차갑게 느껴졌던 그날. 지선은 처음으로 정확한 시간에 타던 버스를 놓쳐 버렸다. 저 멀리 멀어지는 버스를 보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두를 데리고 간 버스는 정류장에 한 사람도 남겨 놓지 않았다. 홀로 벤치에 남게 된 지선은 문득 남겨진 자신을 생각했다.
떠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겠구나. 오지 않을 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외로움 이겠구나. 쓸쓸함 이겠구나.
외로움이라곤 내 몫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던 지선이었다. 지선의 외로움 마저 가지고 떠나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한 사람이 견뎌야 할 외로움의 몫이 있다면 아버진 자신 것도 부족해서 내 몫의 외로움까지 가지고 살아가셨던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지선에겐 외로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앉아 문득 드는 생각들이 거칠게 지선의 마음으로 번지자 뜨거운 눈물이 지선의 뺨을 타고 흘렀다. 얼마 전, 다시는 만날 수 없도 곳에 아버지를 보내 드릴 때도 굳건하게 내어주지 않던 눈물이었는데. 남겨진 이를 생각하는 마음에선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여보, 나 오늘 버스를 놓친 거 있지.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오늘 하루는 쉬어.
-아니. 하루 말고 계속 쉴까 해.
지선의 아버지는 어머니 없이 자신을 홀로 키웠다. 어머니가 없는 빈자리는 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커다란 그리움이었지만 그리움이 컸던 쪽은 늘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랫집 혼자 사는 아저씨처럼 괴로운 자신의 처지를 술로 달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어린 지선에게 따스함을 준 것도 차가움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서늘한 바깥공기가 집안에 맴도는 정도였다. 아버지는 갓난아기가 울 때마다 아랫집 아기 둘을 키우는 집주인아주머니댁에 갔다고 했다. 아기가 너무 운다고 타박하며 홀로 아기를 키우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고 나중에 아주머니가 말씀해 주셨었다. 자신이 반쯤은 키운 셈이라고 말씀하시며 지선이 컸을 때도 흐뭇하게 바라보곤 하셨었다. 자신을 보며 생글생글 잘만 웃다가도 아버지 품에 안겨 집에 돌아갈 땐 전혀 웃지 않는 아빠와 똑 닮은 모습이었다고 했다.
표정 없는 아버지가 지선을 위해 제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는 돌봄이 사랑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머니가 아버지를 보곤 서럽게 울더니 아장아장 걷는 나를 으스러지게 안아주셨다. 그리곤 지선이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강아지의 존재가 되었을 때 그렇게 말해줬다. 자신의 사랑만큼 그 또한 사랑일 것이라고. 자주 그렇게 말해줬던 것 같다. 부정이 아니도록 그 말이 단단하도록 계속 나의 머리에 되뇌셨다.
-우리 똥강아지. 굶어 죽지 않게 너를 먹이고 입힌 건 아빠가 너한테 준 사랑이여.
시골에서 아버지의 소식을 그랬다더라로 듣고, 그랬다로 들은 할머니는 곧장 서울로 올라오셨다. 어머니에게도 애정을 가진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선 아들의 혼인을 할머니가 썩 내켜하지는 않았다고 어렴풋이 생각해 본다. 할머니는 지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불같은 사랑을 했다고 한다. 불같은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설명해 주셨었다. 그 불씨가 나한테 없지는 않을 거라고. 무정한 표정이 다는 아니라고 했다. 내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지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작은 시골마을에 새로 생긴 미용실 앞마당에 바쁜 엄마를 기다리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불쌍해서 밥 한 번 먹이고. 불쌍해서 낮잠도 재워주고 했더니. 자신의 집처럼 미용실이 아닌 할머니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밥을 먹고 낮잠도 자니 산다고 표현하지만 사는 것만큼 자주 다녔었던 것 같다. 어느덧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놀려대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늘 함께한 그 둘이 어느덧 커버려 둘이 살겠다고 나갔을 땐 밥 먹이고 이만큼 키워줬더니. 도둑처럼 우리 집 아들마저 데려갔다고 말했다.
-네 엄마가 도둑은 아니여. 물건을 훔치는 도둑은 아닌겨. 그러면 안 되는겨. 둘이 고만큼 좋아했다고 말하는겨.
두 눈을 끔뻑이며 할머니가 하는 말을 잘 듣고자 노력할 땐. 할머니는 자신이 잘못 한말은 없는지 어린 지선만큼 토끼눈이 되어 곰곰이 생각해 보시던 할머니였다. 어린 지선의 귀엔 좋은 말만 넣고 싶다고 하시며 자신부터 조심하시던 할머니였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이 잘 맞았던 그 둘은 어디서든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없는 살림인 줄 알았지만 서로를 지키던 둘이 나갔으니 잘 살 거라고. 그리곤 어린 딸을 홀로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매번 아버지를 향해 썩을놈이라고 말하면서 괜찮다고 네 탓이 아닌 거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곤 어린 지선에게 어머니의 사진을 보여주시며 동네에서 제일가는 예쁜 아이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선이 예쁜 거라고 말이다.
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이 좋았다. 찬공기와 더운 공기가 집안을 메우면 그럭저럭 따스해졌다. 할머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길 원하셨다.
-너, 글 좀 쓰는겨? 공부는 잘하는겨?
-그럼요. 저 오늘도 백점 맞았어요!
집주인아주머니댁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할머니는 사탕을 주며 내가 글을 배우고 숫자를 배울 수 있도록 하셨다. 글을 더듬더듬 읽으면 산수도 배우고 구구단도 익혔다. 틀려도 잘한다 하시고, 더듬거려도 천재라고 불러주는 할머니덕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것을 익히고 갈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알게 된 지선은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동화책이 할머니가 어렸을 적 들었던 이야기를 하거나 생각나는 대로 지선에게 들려주던 할머니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뿐인 동화책에서 할머니의 끝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 순간이 좋았다. 매일 다른 할머니의 딴 길로 새는 이야기도 좋았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없이 잠에 들지 못할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내겐 다른 이가 부르는 부모의 따스함이었다. 여러 종류의 사랑 중 제일 깊은 사랑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탔던 고속버스는 마주 오던 빗길에 휘청이던 택시와 충돌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던 지선은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게 되었다. 애석하게 고속버스는 할머니의 목숨도 가져갔다.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지선의 사랑도 빼앗겨 버렸다. 시골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어머니와 할머니는 그 길에 죽음을 맞이했다.
할머니가 잠시 시골에 다녀온다고 하시면서 손수 해주시던 모든 것을 어린 지선에게 알려주셨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땐 비누를 손바닥에 두 번 문지르고 이마와 목까지 비누칠을 한 다음 깨끗하게 씻어내는 방법. 작은 양말을 한 손에 모아 비누칠을 하곤 스무 번 정도 문지르는 것. 집에 들어와 현광등을 켜고 문을 잠가야 도둑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가방을 메고 약국을 돌아 학교로 가는 큰길까지 나오는 방법. 쌀을 씻어 밥을 하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과 김을 꺼내 먹는 방법까지 일주일 동안만 하면 된다는 일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신 아버지는 내가 잠갔던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할머니의 죽음을 알려주셨다. 이렇게 돌아오지 않으려고 가르쳐 주신건가 싶었다. 어쩐지 너무 꼼꼼히 빠짐없이 가르쳐 주셨었다. 궁금할 것도 없이 이것이 맞나 고민한 적도 없이 지선은 할머니의 방법으로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할머니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리움으로 번질 땐 아버지가 가진 그리움이 더 컸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리움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할머니의 그리움으로 살았다. 결국 그리움의 내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했다. 할머니는 지선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고 떠나셨다. 자신이 줄게 없다던 할머니 말은 맞지 않다. 할머니가 지선의 세상에 온 뒤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사라지니 다시 어두운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그리움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과거를 움켜쥐게 만들었다. 사무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버지의 삶은 그리워하는 마음이 드러난 삶이었다. 어머니와의 기억이 없던 지선에겐 그리움을 가지고 사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지선은 단어로 아버지의 그리움을 배웠고 할머니의 사랑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배웠다. 그리곤 이제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어서야 그 의미를 깨닫는 중이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행복해 보였다. 다른 이의 눈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선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리움과 사무침의 끝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몇 달 전 나를 찾아왔다. 아니 아버지의 보호자로 병원에서 먼저를 나를 찾았다. 병원에서 말하던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이 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지선의 아이가 태어나고 아들 현이가 할아버지를 부를 수 있을 때쯤 그렇게 예뻐하던 손자를 두고 갑자기 사라졌다. 가끔 아버지를 찾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지만. 흔적조차 남지 않는 아버지는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이젠 없어서 안될 보호자의 이름으로 지선을 찾아왔다. 스트레스로 인한 병이라고 했다. 병명이 있었는데. 어려운 병명보단 병명의 이유가 지선의 생각의 통로를 가로막았다. 온몸의 장기들이 삭아버려 이제 얼마 남지 않는 삶이라고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입에선 그리움의 이름으로 지정된듯한 어머니가 한번 더 언급되었다. 어머니를 만나면 지선과 그의 가족, 특히 손주 현이가 너무 예쁘더라고 말해주겠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행복해 보였다. 그리움의 어머니를 만난다고 생각해서 인지 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병원에 오래 계시지는 않았다. 몸이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에게 운이 좋으면 더 살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운이 나쁜 이야기 일수 도 있었다. 지선이 보기엔 적당히 아픔을 느끼다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예뻐하시는 현이에겐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다고 하셨다. 영상통화로 만난 현이를 눈앞에 아른거려 힘들다고 하시더니 돌아가시기 직전 급히 손주를 보셨었다. 그동안 어떻게 손주를 안 보고 사셨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게 된 현이는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의 사업장에서 근무하시던 직원분들도 훌쩍이며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했다. 멀리서 오랜만에 뵙게 된 친구분들까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이야기를 하며 그의 삶을 애도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곤 나를 토닥였다. 애써 침착하다고 눈물을 참고 있느라 고생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 나는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어머니를 만나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젊은 어머니와 늙어버린 아버지는 이제라도 만나서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애써 참지도 않았다. 지선에겐 아버지는 단지, 꿈을 이뤄서 행복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