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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21. 2024

프롤로그


깊은 바닷속 심해. 나는 그곳에 다녀왔다.


거대한 바위와 나는 하나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가질 새도 없이 한 몸으로 엮인 바위가 이끄는 곳으로 힘없이 추락하였다. 바다였다. 입과 코를 타고 흐르는 공기방울이 나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오롯이 한 몸이 되어버린 거대함과 나약함으로 우리를 온전히 지탱해 줄 바닥을 향해 깊고 빠르게 나아갔다. 어둠을 머금은 바다는 은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세상의 모든 빛이 차단된 그곳은 고요한 세상의 끝이었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그곳에 안착했다. 무사하게 잘 도착한 것은 아니지만 흔들림 없이 어떤 곳에 착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말과 어긋나지만 도착지는 이곳뿐이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끝도 바로 이곳이었다. 흑색의 어둠과 옭아버린 고독한 바다가 나를 짓눌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겨주지 않은 채.



적막한 모든 것이 세상에 내려앉아 나를 삼켜 버리기 직전. 날카로운 빛 한줄기가 나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질끈 감을수록 더 깊고 강하게 베어 들었다. 빛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사람의 존재가 드러나더니 점점 또렷해졌다. 오랫동안 나를 보아온 그 눈빛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상대를 점차 인식할 수 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괜찮냐고 물어 왔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호수 같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눈으로 품었던 걱정을 미소로 바꾸었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곳을 방문한 나에겐 시간이 좀 필요해 보였다고 했다. 그리곤 꼬박 이틀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걱정이 되어 찾아와 보니 오랜 시간 바닥에 누워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을 마주한 그녀가 더 놀랐을 테지만, 자신보다 나를 더 안심시켜 주었다. 이제 괜찮을 거라고 아무 걱정 없을 거라고 말하며 나를 침대에 앉혀 주었다.



그녀가 나를 다시 찾았을 땐, 은은한 허브향이 방안에 흩날였다. 그녀는 꽃향기가 가득한 허브차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손으로 느껴지는 따스함과 은은한 향기로움이 입과 목을 통해 몸속으로 베어 들었다. 몸 안에 흐르는 꽃내음은 내 안의 경직된 모든 것을 깨워주고 나를 점차 안심시켰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그녀는 내가 다시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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