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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26. 2024

흔들의자

8부

그녀는 자신만의 정원옆 공간에 덩그러니 놓아져 있던 흔들의자 앉아 있었다. 많은 시간을 보냈을 의자였다. 앞뒤로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 따스한 담요를 덮은 그녀는 편안해 보았다. 지선에게도 어머니가 앉던 흔들의자가 있었다. 어머니가 앉던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지선이 어머니의 배속에 있었을 때 아버지가 만들어줬던 의자라고 들었다. 지선은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앉아 그 의자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었다. 오지 않던 할머니와 아버지를 기다릴 때면 그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아버지가 만든 의자는 등받이가 넓게 만들어져 앉았을 때 온몸을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었다. 모든 의자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만든 의자는 어머니를 배려한 모양이 숨어 있었다. 그녀가 앉은 의자도 그랬다. 넓은 등받이에 꼭 아버지가 만든 것과 흡사했다. 의자의 모양을 관찰하던 지선에게 그녀가 물었다.


  -이리 와서 앉아 볼래요?

그녀는 자신의 의자의 모양을 하나하나 관찰하던 지선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요. 집에 있던 어머니가 쓰시던 의자와 비슷해서 지켜봤어요.

  -누가 만들어주고 갔거든요. 나무를 뚝딱거리길래. 뭘 만드나 했는데. 삼일 뒤에 이의자가 완성이 되었지 뭐예요. 그래서 그 뒤로 매일 앉고 있어요.

웃는 그녀를 따라 지선도 웃어 보였다.

  -내가 알기론 당신 아버지였을 거예요.

아버지라는 단어에 지선은 잠시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녀는 지난날 아버지가 왔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아들이었던 민은 아버지의 회사에 다녔었다. 민이가 자신의 생모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다녔던 직장이 아버지의 헌신으로 세워진 곳이었다. 남아 있는 직원을 지키기 위해 작고 단단한 회사를 만드셨는데 그곳에서 성실하고 착실한 민이를 눈여겨본 아버지는 더 이상 자신이 회사를 이끌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민이에게 회사를 물려주셨다. 모든 것이 지쳐버린 아버지는 삶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 민이에게 자연이 있는 곳을 추천받아 머물렀다고 했다. 연락이 닿지 않던 그동안 이곳에 머물며 자신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어루만지는 삶을 사셨겠구나 싶었다.


  -재주가 많던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만들어 주었어요. 내가 매일 앉는 흔들의자도. 지난번 현이가 앉았던 어린이 의자도. 곳곳에 쉼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갔지요.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하며 곳곳의 자신의 흔적을 남기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많이 외로웠을 거라고 했다. 남겨진 이의 외로움은 쉽지 사라지지 않더라고. 오래 걸리는 일이겠지만 떠나는 사람의 배려가 남겨진 이에게 새로운 삶이 될 거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오랜 지병을 앓고 있어서 병간호를 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그녀에게도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지선의 아버지가 이곳에 머물며 자신과 이곳을 지켜나가는 것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남편이 죽게 되자 아들 민과 자신의 삶을 토닥여준 것 역시 그였다고 했다. 그리움이 되어 버렸을 자신의 삶에 식사를 함께할 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나뭇가지 위에도 높다란 산에도 듬성듬성 쌓여 있던 눈덩이가 조금씩 녹아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로 만들어졌지만, 문을 닫은 지 오래예요. 날이 추워지면 땔감이며 난로 청소며 손이 가야 할 일들이 많기에 혼자서 하는 건 무리지요.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당신 아버지가 작은 소품들을 만들 때부터 손주와 딸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볼 때부터 알았지요. 당신이 곧 찾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아버지가 적어 주었던 주소에 도착하니 고깔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숙소를 혼자서 운영하신다고 생각했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라 생각해 마음껏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겐 우리가 아버지가 부르신 손님이었다고 했다. 지선이 다시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아버지에 대한 이곳의 이야기가 놀라웠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현이의 의자와 장난감 흔들의자와 그네까지. 이렇게 보고 싶으셨는데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몇 년 이곳에 있었는지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꽤 오래 이곳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내일 떠나겠다고 하더군요. 하긴 떠난다고 말하기 전부터 눈밑의 검은 그림자가 생기고 잘 먹지 못하거나 먼 곳을 하염없이 응시할 때가 많아서. 그리움이 커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떠난 거라고.


당시 죽음을 감지한 아버지께서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한국에 오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를 이곳에 보낼 준비를 하시고 한국에 돌아와 우리에게 건네주시기까지 모든 계획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생전에 하지 못한 아버지의 죽기 직전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하긴, 매일을 살아간다면 할 수 없던 일들이 다가오는 짧은 시간 동안 남은 생에 해야 한다고 여기면 안 하던 것들도 하게 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거뭇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만들어 놓고 떠나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흔들의자에서 지선은 나무의자에서.

  -낮도 밤도 아름다운 곳이지요? 집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예쁜 곳이라 이곳에서 삶을 시작했어요. 가만히 있어도 시시각각 색과 모습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황홀하기까지 하거든요.

무릎에 덮었던 담요를 어깨에 걸치곤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선도 이곳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는 건 어때요? 당신은 잠시뿐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만 괜찮다면 당신의 남편과 아들이 살아가기엔 부족할 게 없을 거예요.

그녀는 지선이 잠시 생각한 것들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해주었다. 자신이 남편과 아들이 없는 삶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주는 위로 덕분이었다고. 바쁜 도시에서 일과 사람에 치여 힘들게 살았다면 이겨낼 수 있었을까 여러 번 생각해 보아도. 현재 자연이 주는 만큼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이 주변에 살만한 장소를 알아보고 있었어요. 이 주변이 아니라도 한적한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당신을 불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아니요. 저는 절대 불편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작은 놀잇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지 않나요? 아마 당신처럼 나도 이곳에서 잠시 머무는 인생이에요. 이곳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면 함께해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현이가 왔을 때. 지난날 작은 민이가 내 곁에서 뛰어놀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너무 행복했거든요. 당신이 없는 외로움을 잠시라도 내가 토닥여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작은 현이가 슬퍼할 때 내가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건 너무 행복할 것 같거든요.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면요.


그녀는 자신이 없는 삶에 슬퍼할 그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이 떠났을 때 아버지가 이곳에서 자신을 바라만 주었던 모든 행동들 또한 위로였다고 했다. 자신의 그렇게 현이와 남편옆에 있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 잠시 머무는 인생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 될 것 같아요.

어둑해지는 자연 안에 따스한 조명을 밝힌 그곳에서 그녀는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을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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