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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27. 2024

해 뜨는 곳

9부

아들 현이가 잠이든 것을 확인한 도현은 아들의 방문을 살며시 닫고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 맞은편 텔레비전 검은색 화면에서 도현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지선과 통화한 그날 이후 도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회사에 나갈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현이 덕분에 버텼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멀미 때문에 오지 못한다고 생각한 현이 덕분에 버텼다. 엄마를 걱정하는 현이 덕분에. 내 걱정을 비출수가 없었다. 조금은 정상적인 척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이가 잠든 밤이 되면 미칠 것 같은 생각들이 도현을 괴롭혔다. 지선과 함께하던 방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없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 물건과 상황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그나마 불을 끄고 소파에 누워 있는 상황이 덜 외로웠다. 3개월 후에 그녀가 정말 세상에 살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했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지선은 앞으로 독일에서 지내자고 했다. 지선이 남은 생은 그곳에서 머물고 싶은 것인지 물었지만 도현과 현이가 이곳에서 머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지선을 알고 있었다. 애정이 없던 아버지였다고 했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녀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았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눈물로 쏟지 않아서 가끔씩 드러나는 아쉬운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지선은 늘 그랬다. 다른 이의 감정을 애써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남모르게 돕던 지선이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늘 따뜻하던 지선이었다. 지선이 눈물로 보냈을 그날들이 안타까웠다. 토닥여주지 못해서.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어제는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은 답답함에. 오늘은 지선이 홀로 힘들었을 미안함에 주체하지 못한 눈물이 넘치도록 흘렀다.


지선은 검소한 사람이었다. 잠시 곁에 머문 할머니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주고 떠나셨는데. 그중 하나가 검소함이라고 했다. 작은 돈도 아껴 써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했고. 지선이 작아져서 버리는 옷을 꿰매 다시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없어서가 아니라 아껴야 잘 산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마련한 아파트였다. 지선의 아끼고 모아 결혼 10년 만에 장만했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집을 살 때 해가 잘 드는 곳이 우선순위였다. 크기는 작지만 셋이 지내기 딱 좋은 집이었다. 그렇게 검소하게 모은 집에서 평생 살아갈 거라 생각했었다. 죽음은 우리의 계획에 없었다. 지선이 없는 아침이 되어 밤새 흘렸던 눈물이 뺨에 달라붙어 겨우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지선이 없는 삶에 힘들게 모은 아파트도 필요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삶을 이어 줄 곳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집을 살 때 해가 잘 드는 곳이 좋다고 했었다. 할머니가. 지선이 학교에 다닐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단 몇 년간 할머니와 함께 지냈지만 많은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떠나셨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할머니입에서 나온 모든 말들을 기억하기도 했었다. 화김에 나오는 욕까지도 할머니의 모든 말들을 사랑했었다. 독일의 오두막집은 할머니의 생각이 잘 반영된 집이라고 생각했다. 해가 잘 들고. 따뜻한 물이 잘 나오고. 자연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세금이 많이 필요 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지선이 독일에 남고 도현과 현이가 한국에 도착한 뒤로 첫 통화를 했었다. 도현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전화로 듣게 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도현이 아파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곤 이틀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이곳에 올 준비를 하겠다고 말이다. 지선이 원했던 말이지만. 낮은 목소리로 그 말을 전하는 도현이 너무 슬퍼 보였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도현에게 미안했다.


  -미안해. 힘들게 해서. 갑자기 이곳에 살자고 해서.

도현의 무거운 목소리에 지선이 감당할 수 없는 미안함이 그녀를 억눌렀다.

  -그동안 많이 생각해 봤어. 당신이 했던 선택들을...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 옳은지. 그곳에 사는 것 또한 옳은 건지.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지금은

  -평생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당신이야. 당신과 현이가 그곳에 살길 원한다면 내가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어.

  -나 혼자라면 어떤 선택이든 당신 말에 따랐을지 모르겠지만. 현이를 먼저 생각했어. 현이가 어느 곳에 사는 것이 더 좋은지 말이야. 그래서 내선택이 그곳이야. 당신과 힘들게 장만해서 모았던 아파트를 당장 팔아야 할 것 같아 조금 싼값에 내놨더니 당장 이 집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나왔어. 그래서 아마도 오늘 계약을 하게 될 것 같아.

도현의 무거운 목소리는 오랜만에 들어본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장에서 나물장사부터 시작해 안 해본 장사 없이 도현을 키워내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도현은 목놓아 울었었다. 도현의 기쁨이 어머니의 기쁨이었다. 바르고 정직하게 잘 자란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던 훌륭한 어머니였다. 그러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울다 지친 도현의 목에서 나온 소리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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