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 못한 잠에 빠져 삶을 잃어버릴까 두려웠던 날들이었다. 끝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던 삶의 마지막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온전한 잠을 잘 수 없었다. 삶을 놓게 되는 순간이 되어버릴까 두려웠다. 그리움으로 채워질 모든 순간이 무서웠다.
아득히 먼 곳에 다녀왔다. 미세한 생물조차 존재하지 않던 그곳에 크고 막대한 힘에 눌러 땅끝으로 꺼져버렸다. 오롯이 혼자서 그 힘을 감당하며 아니 감당할 수 없으니 그냥 존재하며 그렇게 시들고 있었다. 3개월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라도 될 텐데.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지선을 그녀가 깨웠다. 깊은 잠이었다고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절대 깰 수 없었다. 이대로 사라져도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았다. 에워싸는 시커먼 적막 속에서 한 줄의 빛이 아니었더라면 이대로 가장 좋은 안식처라도 된 듯 온몸이 눌려 살아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전에 떠났던 지선이 다시 돌아온 것에 그리곤 이렇게 지쳐 쓰러져 버린 것에 그녀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던 그녀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물었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르겠을 지선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들려주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이야기도 있었고. 남편 도현에게도 하지 못한 깊은 감정의 이야기도 있었다. 이대로 깨지 않았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을 지선을 일으켰다는 감사함인지 마음을 비우고 싶던 지선의 찰나였는지 그녀에게 평범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소 우울했을 지선의 삶을 조금씩 꺼내보았다. 모조리 전달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선의 이야기가 보잘것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지선의 삶에 들어와 할머니와의 추억의 곳에서 들여봐 주었고. 아버지의 임종에서 지선의 마음속 깊은 진심을 봐주었다. 이야기가 어느덧 끝이 났을 때 지선은 그녀를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말할 수 없는 감정까지 다 들킨 것 같았다. 이 문을 박차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랫동안 지선의 눈과 입을 응시하던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지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곤 배가 고프겠다고 했다. 비워내니 고프겠다고.
그녀가 서둘러 이끈 곳은 가족과 함께 식사했던 식탁이 아니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한쪽 구석에 있는 정원옆 공간이었다. 개인적인 공간인 것 같았다. 식탁을 둘러싼 정원은 따스한 햇볕에 녹아버린 눈송이가 사라진 자리에 앙상한 가지와 조금의 풀잎들이 있었지만 허름하거나 누추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는 자리였다. 자주 앉지 않았을 새하얀 철제 의자에 담요를 깔아주며 이곳에 앉아 기다리라고 말해주었다. 지선이 앉은 의자와 달리 탁자와 맞은편의자는 사람의 손길이 자주 닿아 조금은 윤기가 있어 보였다. 짐작해 보건대. 그녀의 숙소 앞 정원 탁자엔 남편과 생전에 함께했던 곳으로 보였다. 함께 이곳에 앉아 예쁘게 피어난 꽃들과 열매를 보며 살아갔을 그녀의 삶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고소한 냄새가 저만치 멀어진 곳에서부터 조금씩 진해지더니 한가득 냄새를 가진 음식을 들고 그녀가 나타났다. 지선 앞에 내려놓은 수프 한 그릇은 그녀의 따뜻함이었다. 속이 상한 아이에게 내어 주었을 어머니의 따스한 밥상이었다. 어떤 말도 하지 않은 그녀가 꺼낸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가장 큰 위로였다. 모락모락 피어오른 연기를 후후 불어 한입 두 입 먹었더니 비었던 배속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맛있게 먹는 지선을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사라지더니 감자로 예쁘게 빚은 파스타를 만들어왔다. 동그랗게 말린 모양의 반죽을 가리키며 감자라고 했다. 우유로 만들었을 소스와 잘 어우러진 파스타였다. 지난날 어머니가 고속버스에서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죽음을 앞둔 지선에게 이렇게 따스한 밥상을 내어 주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잘 먹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녀는 잘했다고 안아주었다.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한겨울의 추위가 물러가고 따스한 봄이 된듯했다. 잔잔했던 호수는 반짝이며 아름답게 빛이 났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호수를 바라보며 그녀가 가져다준 담요를 덮고 온화한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고 있었다.
-따뜻하네.
그녀가 들릴 듯 말 듯 내뱉은 말이 귀에 익숙했다.
-한국어는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긴말을 한국어로 물었을 때 이 말의 대답이 어색하지 않다면. 그녀는 분명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들 덕분에.
또박또박 지선에게 들린 한국어가 놀라웠다. 그녀의 이름은 에리카이고 남편이름은 칼이라고 했다.
에리카와 남편 칼은 서로 다른 역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났다. 에리카가 잘못 타버린 기차 옆자리에 남편 칼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운명이라고 했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둘의 인연은 길지 못했다. 사는 곳이 다른 둘은 서로가 그리워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은 서로 다른 도시에 있었기에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만날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사랑한 둘은 모든것을 정리하고 중간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 가족을 위한 집을 지어 살게 된 곳이 이곳이었다. 아이를 낳을수 없던 에리카와 칼은 입양을하였고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예쁜 한국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서툴었던 자신에게 엄마라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닮아가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꽃과 나무가 아이에게 친구였고. 호수가 그의 놀이터였다. 어느덧 커버린 아이는 자신의 모습과 부모의 모습이 다름을 깨닫게 되었고 아이를 위해 생모를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한국어를 더듬거리며 말하고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도 아이의 뿌리를 잊지 않길 원했던 그녀와 남편의 바람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아이를 버린 죄책감으로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낸 생모를 찾게 되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과 여건에 잠시 맡겼다고 곧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다시는 그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시도 잊지 못한 채 늘 그리워하는 삶을 살았다. 성인이 된 아이는 자신의 손길이 더 필요한 생모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다. 아이를 키워준 그녀는 다른 이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찾은 아이의 모든 삶을 존중하고 축복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작년에 남편까지 떠나보내고 자신에게 남은 생을 이곳에서 그들을 기억하며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기억을 가진 이곳에 남은 생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이다.
그동안 외로웠을 그녀를 생각하니 참았던 눈물이 금세 달아올랐다. 애써 참던 그녀도 지선의 고인 눈물을 바라보더니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언제든 당신이 머물고 싶은 날까지 이곳에 있어도 된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가족의 그리움을 위로해 주고 이 세상을 편히 마감하길 바란다고 말이다.
지선은 이곳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 이곳에 다시 부른다고 했었다. 순간적인 말은 절대 아니었다. 짧은 삶이지만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시간 내에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결코 감정에 이끌린 깊이 없는 말은 아니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곤히 자는 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잔잔한 물가가 고요히 흐르다가 거친 파도가 몰려오면 다시 잔잔해지기 어렵다고. 지선이 없는 삶을 견뎌내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그들이 원한다면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마음뿐이던 지선에게 잠깐씩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서 확신을 얻었다. 쉽지 않은 선택을 지선이 해주고 싶었다.